'이회창 대선출마설'은 한나라당의 '불씨'?

이회창 대선출마, 정말 실현될까?

등록 2007.10.22 21:49수정 2007.10.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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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소설 <킹메이커>는,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각각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사실상 '시의성'이 지나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치판과 유력정치인 사이의 '인과관계'가 흥미롭게 묘사돼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들어 생각나는 <킹메이커> 속의 한 장면은, 이명박 후보 측 이재오 의원이 '이회창 지지 선언'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한나라당의 마지막 '제왕적 총재'였고, 여전히 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회창 전 총재는 이명박·박근혜 양자와 감정적인 앙금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과거에 "나는 (한나라)당의 지원 한 번 받지 않고 독자적인 힘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는 발언과 "인간적으로는 (이회창보다) 노무현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이회창 전 총재와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사이가 된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죠. 2002 대선 당시에 탈당 후 미래연합 창당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이회창 전 총재의 대구·경북 지역 득표력을 떨어뜨려 패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불편한 일'이 있었던거죠.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전면에 다룬 <킹메이커>는, 그러면서 이회창 전 총재가 '이명박의 불안사유로 '케이준(김경준)'을 지목하면서 지지를 꺼리고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과거 '대쪽'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엘리트 판사의 경력, 그리고 대선 후보 시절에도 '정의'와 '도덕'을 강조했던 이회창 전 총재로서는 'BBK 의혹'을 쉽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란 가정은, 충분히 일리있었습니다.

 

이회창, 사실상 '이명박' 도왔다?

 

그런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딱 한번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지난 7월 16일 당시, 강재섭 대표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식으로 '경선'에 대한 총괄적인 조언을 남긴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후보자 검증 청문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각 후보들만이 아니라 검증위 활동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갖게 되고, 차라리 검찰에 넘겨 확실하게 진실을 밝히라는 요구가 나올지 모른다."

 

엘리트 법관 출신다운 발언입니다. 하지만 '후보자 검증'이 당내 검증을 넘어 '검찰'로 넘겨지면, 상대적으로 비리 의혹이 더 많았던 이명박 당시 예비후보에게 악재가 됩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여기에 첨언합니다.

 

"청문회 개최를 변경할 수 없다면, 검증위가 주체가 돼 진실을 규명하고 추궁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후보들이 자신에 관한 신고 내용에 대해 국민 앞에 직접 해명하고 이에 대한 자료를 설명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청문회는 제3자가 후보를 신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후보 자신이 국민에게 해명하고 설득하는 자리로 만들라는 것이다. 당은 후보 검증도 적정히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후보들을 보호할 책임도 있다. 당 안에서 지나친 검증 공방으로 후보들이 큰 상처를 입는다면 이는 바로 당의 상처가 될 것이다."

 

이건 일종의 '구멍'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지나친 검증 공방으로 인해 후보들이 큰 상처를 입으면 곤란하며, 당은 후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를 계기로, 이회창 전 총재는 '이명박'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당시에는 '정수장학회' 등의 의문점이 있었지만, '다스'나 'BBK', '도곡동' 등 자극적인 의혹들이 더 많았던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검증에 있어서도 박근혜 전 대표는 "정면으로 받아들여 검증받겠다"고 했지만, 이명박 후보의 대처는 한마디로 '소이부답(笑而不答)'이었던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회창 전 총재의 '말 한마디'가 실질적으로 '이명박'의 손을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있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랬던 이회창, 왜 '소문'의 진원지가 되는가

 

최근 들어, '이회창 무소속 대선출마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일부 창사랑 회원 등, 이회창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돌던 이야기가 이제는 언론지상에서도 다뤄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관련 소식을 다룬 <연합뉴스> 22일자 기사 <'昌 재출마설' 논란 확산>을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현재 여론지지율 50%를 넘어서는 절대강자 이 후보가 왜 불안하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전 총재의 한 지지자는 "여권에서 시기를 저울질하며 이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힐 히든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김경준의 귀국으로 BBK 문제, 도곡동 땅 문제, 병역문제, 상암동 DMC 특혜분양 의혹과 AIG 국제금융센터 국부유출 우려, 뉴타운관련 비리 의혹, 친인척의 전국적인 땅 투기문제 등 굵직한 핫이슈가 실타래 처럼 얽혀 터질 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마치 점령군이 전리품 나눠 먹듯 당권을 싹쓸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집권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또 이 후보 주변 인물들을 보면 과거 좌파운동을 했거나 운동권 출신이 대부분인데 이래서는 현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없다"며 정체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일 한 세미나에 참석해 대선 출마설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정권 교체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안하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명박 후보를 중심으로'라는 말도 빠지면서 그가 재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돌기 시작한 것."

 

소설가 김진명이 <킹메이커>에서 다뤘던 것처럼, 엘리트 법관으로 유명해진 이회창 전 총재로서는 이명박 후보의 숱한 의혹을 미심쩍어 할 수도 있다는 관측, 그리고 대선후보 확정 이후 '이재오'와 같은 인물을 중시하면서 '친북좌파'들이 당을 장악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우익논객 지만원씨는 이런 주장을 노골적으로 전개하다가 구속까지 됐던 적이 있습니다.

 

2002 대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는 '효순·미선 미군 궤도차량 압사 사건'과 그로 인한 '촛불시위'에 의한 직격탄을 맞으면서 낙마했습니다. 전통적인 '친미 우익 정당'인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였으며, 그 스스로도 그 정체성을 중시하면서 그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앞에서 "이번 대선은 보수우익과 친북좌파의 대결"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이명박 후보가 과거에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에 동의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의구심을 느낄만 한거죠.

 

그러니까 김진명이 <킹메이커>에서 주장했던 "昌은 이명박에게 있어 '김경준'이야말로 이명박 검증의 핵심"이라는 예측이 일리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원칙'과 '도덕'의 화신으로 통하는 엘리트 법관 출신 전직 총재가 숱한 비리의혹의 도마 위에 오른 후보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할 수도 있다는 뜻일 듯합니다.

 

즉, '김경준 귀국'이 현실화되고 있고, 그 '김경준'의 귀국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회창, 과연 '대선출마'는 가능할까

 

이회창 전 총재 측은 '무소속 대선출마'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박종웅 의원이 회장으로 있다는 '민주연대 21'이라는 곳에서  "이회창 전 총재는 작년에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라는 발언을 하는 등 계속 출마설이 나돌았으며 이 시점까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대해 유감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반응까지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가 불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취지가 무엇인지, 누구를 중심으로 뭉치자는 것인지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 전 총재는 정계원로로서 지금이라도 불출마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좌파정권 연장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세력이 총집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정계은퇴' 선언은 번복될 수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바로 그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가 그 유명한 'DJP연합'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던 전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도덕'의 상징으로 통하는 '대쪽' 이회창 전 총재는 '출마'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 이유는 지난 1997 대선 당시, "이대표(이회창)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입니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김대중 총재의 정계은퇴 번복'과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경선 불복'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본인의 '차별화된 도덕성'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예전부터 '좌파정권 종식'을 내세우면서 한나라당에 '정권교체'를 강하게 주문했습니다. 그런 그가, '무소속 대선출마'를 통해 한나라당의 기반을 양분하면 '범여권'을 도와주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명박의 낙마'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과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는데다가, 만일 그게 현실이 된다 해도 그 자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차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텐데도, 이회창 전 총재가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무소속 대선출마'라는 강수를 선택할지는 의문입니다.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서로 다른 분위기

 

이명박 후보는 50%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을 얻고 있음에도, 한나라당의 정신적 기둥이나 라이벌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본인의 비리 의혹과 더불어 '불씨'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통합민주신당은 경선에서 패한 손학규·이해찬 양자가 일찌감치 '정동영 지지'를 선언하는 등, 정동영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쉽게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보기좋은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5년 전, 한나라당은 '이회창'이라는 제왕적 총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지금의 이명박 후보처럼 '대세론'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대선에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런 과거의 모습과 비춰봤을 때, 이런 '불씨'는 앞으로 남은 두달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일면도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과거 '이회창의 대세론'도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22 21:49ⓒ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경준 BBK #이명박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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