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근재씨가 달고나 좌판을 하던 곳에 누군가 국화 한 송이를 두고 갔다. 이씨는 부인 이상미씨와 100여m 떨어진 곳에 노점을 폈다.
이민정
고양시 “이씨 자살, 노점상 단속으로 인한 죽음 아니다”전노련은 이씨의 죽음으로 투쟁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전노련은 지난 16일부터 ▲노점상 단속 중단 ▲용역 깡패 해체 ▲자살한 노점상 이근재씨에 대한 보상과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고양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청의 입장은 강경하다. 노점상은 명백한 불법이며, 시민들의 민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단속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점상인들의 저항에도 단속은 계속된다는 데 변함이 없었다.
김운영 고양시청 공보관은 “시는 올해 초부터 불법 노점상, 노상 적취물, 불법 주정차 및 광고물 단속 등 4대 질서 원칙을 확립하고자 지속적으로 단속을 실시했다”며 “지난 11일부터 노점상 단속을 시작했고, 상인들과 마찰을 빚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시에 대규모 노점상이 많다보니, 의정부나 파주 등지에서 모이는 바람에 우후죽순 격으로 노점상이 생기고 있다”며 “시민들의 불편 신고가 잦아졌기 때문에 단속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직원들을 동원한 데 대해 “공무원들끼리 단속을 하다가 노점상인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며 “그래서 용역 회사에 의뢰를 하게 됐지만, 나갈 때마다 공무원들과 함께 나갔다”고 해명했다. 31억원 노점 단속 비용에 대해서는 “4대 질서 확립에 드는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양시쪽에서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먹고 살기 힘든 이들에 대해서는 노점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며 “그러려면 현재 노점상에 대한 실태조사가 있어야 하는데, 노점상들이 자신들의 신분 노출을 꺼리며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씨의 죽음에 대해 “지난 11일은 주엽역 인근 태영플라자 주변을 단속하던 중이었고, 이씨가 영업을 하던 곳은 아니었다”며 “집중 단속 구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영업하던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은 이번 단속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고양시는 지난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씨가) 발견된 곳의 주변에는 자살의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유서도 없었다”며 “자살 원인에 대해 경찰에서 조사중이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전노련의 선전전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고양시와 전노련 간의 대화는 결렬된 상태다. 전노련은 “유족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고양시는 “이씨의 죽음이 단속으로 인한 자살로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어 양쪽의 주장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지자체, 서민의 생존권 없앨 권리만 갖고 있나"
▲지난 18일 전국노점상총연합회 회원 100여명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한나라당 소속인 강현석 고양시장을 압박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아 당직자와 면담을 하고자 했다.
이민정
조덕희 전노련 집행위원장은 “고양시가 노점상 실태조사를 요구한 적이 한 번 있지만, 악용의 소지가 있었다”며 “노점상을 기업형과 생계형으로 구분하면서, ‘단속을 할 때 도망가면 생계형, 반발하면 기업형’으로 보는 등 상식 이하의 기준을 들이댔다”고 반박했다.
조 위원장은 “노점상이 불법인 것은 맞지만, 서민들의 최후 생계 수단인 노점상의 발생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며 “법의 잣대만 들이대서 '불법'으로 몰 것이 아니라 국민 생존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업과 비정규직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부나 지자체장에게 서민들의 생계를 끊을 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노점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에 대해서는 왜 생각해보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유의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고양시는 노점상을 불법으로만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세금을 내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등 타협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불법이라는 이유로 눈앞에서 없애려고만 하는 것은 탁상행정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유 사무국장은 “서울시의 경우, 노점상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난 2월 ‘노점관리특별대책’을 통해 노점상을 허가하는 시범지역을 만드는 등 대안 마련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정책이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고양시는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권활동가 박래군씨 또한 “노점상 문제는 빈곤의 구조로 봐야 한다”며 “국가는 우선 서민들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용역을 앞세우고 예산을 퍼부어서 노점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시민들의 불편 때문에 단속을 한다고 하지만, 생존의 권리와 시민이 겪는 불편을 동급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저소득층이 먹고 사는 문제를 시민들의 통행 불편보다 낮게 보는 것은 올바른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용역을 앞세워 행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 관청은 쫓는 자이고, 하루살이처럼 길거리에서 벌이를 해야 하는 노점상은 쫓기는 자이다. 전국적으로 매일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추격전,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노점상인들, 한나라당 규탄 대규모 집회 |
전국노점상총연합회(집행위원장 조덕희·이하 전노련)는 한국진보연대 등 70여개 단체와 함께 ‘고 이근재 동지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22일부터 대규모 투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들은 대부분 지자체장들이 속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규탄 집회를 열 예정이다.
조덕희 집행위원장은 21일 “고양시 안에서는 선전물을 뿌리는 등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전에 들어갈 것이고, 고양시청 앞에서는 이 동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복 시위’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23일 전노련의 74개 지역연합이 시도별 한나라당 지역위원회 앞에서 촛불시위를 열 예정”이라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와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다음날(24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전노련 회원 100여명은 지난 18일 오후 한나라당 소속인 강현석 고양시장을 압박하기 위해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항의 방문했지만, 당직자와의 면담을 성사되지 않았다.
한편 고양시의 집중 단속과 집회 참석으로 영업을 쉬었던 고양시 소재 노점상들은 21일 오후 영업을 재개하면서 고 이근재씨를 추모하는 뜻으로 노점에 촛불을 켠 채 영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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