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에 완공한 금동미륵대불.
안병기
법주사 경내 수정봉 아래는 금동미륵대불이 서 있다. 여러 차례 몸을 바꾼 전력이 있는 기구한 미륵대불이다.
원래 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12년(776년), 진표 율사가 을 처음 조성했다고 한다. 17세기 조선의 선비 정시한은 그가 쓴 <산중일기>에서 처음 본 미륵불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전략)말을 달려올라 가보니, 법주사가 수정봉 아래에 있었다. 지대가 평평하였다. 제3문으로 들어가니 높이가 7,8장쯤 되는 동주가 있었다. 여러 비어 있는 청사를 지나면서 보니 5층 각에는 8상의 부처가 있고 2층각에는 미륵불상이 있는데 높고 우장한 것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바였다. 또 3개의 공청이 있는데 모두 불상이 있었다.대웅전에 이르니 2층이었고 3불상이 모두 해인사의 불상보다 규모가 컸으나 다만 원광이 없었다. 다 보고 나서 부도암으로 곧장 오니 노승 천호의 나이가 84세였다. 지관과 도헌과 3인이 함께 유숙하였다. 감사하는 서찰을 써서 희천의 노비에게 붙이고 법주사에서 말을 먹이게 한 다음 유숙하고 새벽에 떠나도록 하였다. - 정시한(1625~1707)의 <산중일기>1686년 10월 5일치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징발되었다고 한다. 1939년,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한 조각가 김복진(1901~1940)이 1백 척의 시멘트 미륵불 조성 불사를 맡는다. 그러나 이 불사는 김복진의 갑작스런 요절로 완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 시멘트 미륵불은 1964년에 이르러서야 박정희 대통령의 발원으로 완성된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을 허물고 청동대불로 세웠다. 그때 들어간 청동이 약 160톤가량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 다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시작한다. 원래 제 모습을 찾아준다는 의도였다. 개금불사는 2002년 6월에 완공되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혔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고 한다.
왜 그토록 막대한 금을 소비하며 금색을 입히는가. 부처의 피부는 황금색이며 그 금색은 염부단의 금색이라고 경전은 말한다. 대설산(大雪山)과 향취산(香醉山) 중간에 있는 염부단천이라는 시내에서 나는 사금의 색깔과 같은 금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금색상(金色相)을 입히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