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매월당 설흔의 생질인 임선행이 세웠다는 매월당 부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장동언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이 곳을 기준으로 승(僧)과 속(俗),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생사윤회의 중생계(衆生界)와 열반적정의 불국토(佛國土)가 나누어진다는 등 정시인과 일주문에 대한 지식을 나누며 조금 더 올라가니 고찰의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백련사가 눈앞에 다가선다.
덕유산을 배경으로 그 중턱(해발 920m)에 자리 잡은 백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덕유산 기슭에 핀 백련을 보고 토굴을 처음 지어 은거한데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아타깝게도 6.25전쟁 때 사찰의 모든 당우가 불타 버렸으며, 그 뒤 10여년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60년대 중반부터 지역주민들의 성원 속에 복원불사가 꾸준히 진행되어 지금은 대웅전과 원통전, 명부전, 보제루, 천왕문, 일주문 범종각 등이 갖추어져 사격을 쇄신, 새로운 가람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덕유산 남쪽 기슭 거창에 살았던 명종 때의 선비 갈천 임훈(林薰)이 이 곳을 9000명의 성불공자(成佛功者)가 머문 땅이라 하여 ‘구천둔(九千屯)’이라 했다고도 한다.(기록에 의하면 구천동 골짜기에는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함.)
정시인의 말을 빌면 백련사는 정토종의 사찰이라고도 하는데, 이유인즉 1672년 덕유산을 기행한 윤증의 <유여산행기>에 보면 덕유산을 여산이라 지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살펴 본 전관당 부도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사찰의 제3관문인 천왕문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33천 중 욕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지배자로서 수미의 4주를 수호하는 신을 일컬어 사천왕이라 한다.
지국, 증장, 광목, 다문의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 어쩌면 이 곳은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곳이니 마음을 가다듬고 출입하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