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의 한 장면.
총기 관련 폭력은 미 제국의 사회통제 기제 자체와 관계있습니다. 에이사 쿤은 공포와 폭력이 주요 특징인 제국에서 어린 시민으로 살았습니다. 에이사 쿤은 폭력적 행동,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한 공격성, 물리적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등에서 다른 제국 시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이사 쿤이 여타 시민과 차이나는 것은 그가 저지른 행동이 미국 정부가 용인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며, 그 대상이 미국 시민이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대중매체에서는 다루지 않는 더 큰 맥락을 살펴봐야만 학교 총기사건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 제국 시민의 사회관과 총기에 대한 견해는 상존하는 공포와 따로 생각할 수 없으며, 미국역사에 얼룩진 폭력과 개인주의에 대한 신경증적인 믿음, 긴 세월에 걸친 총기류에 대한 애착을 생각해보면 에이사 쿤 사건은 조금도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콜럼바인 때도 버지니아텍 때도, 그리고 지금도학교 총격 사건에 대한 미국 대중 담론은 테러 위험에 대한 담론과 비슷합니다.
첫째, 두 담론 모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니 누구나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 메시지입니다. 언론과 미국 정부는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 두 담론 모두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기보다는 단세포적 반응을 유도하는 틀에 박힌 분석에 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피해가 우려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각자 총을 끼고 다니고, 공항과 공공건물과 학교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고, 무장한 경찰과 경비원 숫자를 늘리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테러집단은 군대를 동원해 응징하고, 학교에서 말썽부리는 열네 살짜리 학생을 제압하는 데 특별기동대를 동원하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수갑을 채우고, 감시용 카메라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설치하는 것을 해법이라고 내놓습니다.
폭력을 더 증가시켜야 잠재적인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과 막연하고도 전반적인 공포에 기초한 이런 대응책은 전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흔하게 널려있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총은 미국인에게는 생활의 일부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미국인들은 초군국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이른바 '서부개척시대'에 관한 국가적 미신과 상관있습니다.
현재 많은 미국인, 특히 총기소지권을 옹호하는 미국인들은 '와일드 웨스트(The Wild West)'라고 흔히 부르는, 초기 미국사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미국적 정신과 문화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와일드 웨스트'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많은 사람이 농촌에서 농업과 수렵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들에겐 식생활과 치안을 위해 총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변방 백인의 생활이란 원주민공동체를 침략해 파괴하고 땅을 빼앗아 정착민 마을을 건설한 후, 들짐승을 잡아먹고 위험한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변방에는 경찰이나 법질서라는 것이 미약했고, 잘해야 보안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한 번 순찰하는 데 며칠 걸리는 광범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판사도 작은 동네를 순회하며 재판했습니다. 수렵용이나 원주민 살해용으로 뿐만 아니라, 1880년대 '와일드 웨스트'의 주민들은 안정적인 경찰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잡도둑이나 가축도둑을 막는 데도 총이 필요했습니다.
총 한 자루에 담긴 '와일드 웨스트'의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