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9년 12월 창원에서 열린 '마창노련 창립 2주년 기념, 제1회 들불대동제'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
민주노총 경남본부
이날 인터뷰는 이런 식이었다. 굳이 대통령에게 "왜 말씨를 그렇게 써 가지고…"라고 묻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하면서 자리를 깔아줬다. 임기말이 되니까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말씨 이야기가 나와서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그동안 이해가 잘 안됐던 대목을.
- 그런데, 말씨 때문에 언론에 하도 많이 당하셨으니까, 아 이 말을 하면 또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텐데, 왜 자꾸 그게 반복되는 것 같습니까?
"내가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거든요. 냉소적인 얘기라든지, 역설적인 얘기라든지."
궁금증의 하나가 풀렸다. 무심결에 그런 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자극적인 말을 좋아" 한다고 했다. 왜? 그 이유가 궁금했다.
- 언제부터입니까, 고등학교부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군대에 있을 때는 음담패설 이런 걸 잘했어요(웃음). 그건 당시에 일종의 삶의 방편이었거든요. 음담패설이라도 (재미있게) 한 자리해야 동료들 사이에 편하니까…. 아마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게 된 것은) 운동권 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모르겠네요."
노 대통령은 "군대 갔다와서 변호사 되고 스스럼없이 곱사춤도 추고 다니고 그랬는데" 하면서 운동권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운동권 진입은 1987년 6월항쟁 참여 전후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운동권 되고부터 말투가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반어법과 역설법을 쓰고, 감정적으로 팍 폭발적으로 자극적인 것을 쓰고…. (그리고 그런 효과는 민주화 현장에서) 대중의 언어를 써야 그게 전달이 되거든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대에, 대중과 함께 투쟁을 해야했던 시대에 대중에게 효과적인 전달을 하기 위해 그런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사 그렇게 개인사적으로 체화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아니 국민적으로 '노 대통령은 말씨 때문에 다 까먹는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왜 그것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을까?
"내가 '깽판', '거들먹거리고' 이런 표현을 쓴 것을 TV로 봤는데, 내가 봐도 좀…, 그런데 그런 말을 한 것을 (TV에서 보기 전에는) 기억도 못하고 있었어요."
부지불식간에 그런, 부적절하게 보이는 말투가 섞여 쓰여진다는 거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말 때문에 인기 얻었는데 왜 다른 때는? 그런데 의문이 다 풀리지 않았다. 인내의 적용 방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2일 4시간에 걸친 참평포럼 연설에서 '자극적인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같은 연설에서 "남북관계에서 굉장히 인내를 많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이 그렇다. 그 결과가 이번의 2007남북정상회담 성사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합의내용 성과도 있었지만, 말 때문에 큰 점수를 얻었다. 히트작을 만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룻밤 더 쉬어가라, 대통령이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합니까"라고 하자 "큰 것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전팀, 경호팀과 상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 한마디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믿음을 줬다. 평상시에도 저렇게 시스템적으로 국정을 해왔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마도 그게 정상회담 직후의 지지도 50% 초과의 한 원인일 게다.
그런데 왜 남북관계의 일처리에서 보여준 그 신중함과 인내심이 왜 국내정치나 언론관계 등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왜 좀 더 참지 못하고, 좀 더 다양한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화끈한 말을 쏟아내, 본론이 주목받지 못하고 곁가지가 부각되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버릇'이 아니라 일종의 '홍보전략'일 수 있다고 의심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어떤 상황이나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그래서 이렇게 물어봤다.
- (그동안 대통령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내가 침묵하고 있으면 도저히 스트레스 받아서 안되겠다, 차라리 화끈하게 이야기하자, 뭐 그런 것이 폭발하는 건가요, 아니면 홍보전략의 일환인가요? 국민들이 주목하게 만들고 싶은 의제에 대해 내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게 제일 낫다, 뭐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건가요?
"물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긴 있지요."
이렇게 말을 꺼낸 대통령은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 말이라는 것이 정치의 수단입니다.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어떻게 정치가 되겠어요. 오늘날 민주주의는 군대와 경찰을 가지고 통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말을 통해서 하는 것인데, 말을 한다는 것은 핵심적 내용도 전달해야 하지만 해명도 해야 되고 오해도 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런데 (해명과 오해를 풀) 그런 길은 (현재와 같은 언론상황에서는) 전부 봉쇄돼 있어요. 완전히 봉쇄돼 있습니다. 그렇게 봉쇄돼 있으니까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한테도 내 얘기가 다 전달이 안 되고…. 그래서 절박한 수단이 필요하고, 그게 이제 참평포럼 강연의 계기지요. 그래서 말을 안할 수는 없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공감하고 박수치고 좋아했는데, 나중에 현장에 없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그래서 그 점에서는 굉장히 고통을 받죠."
그러니까 악순환이라는 거였다. 언론이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안다루니까, 해명을 재대로 보도하지 않으니까, 직접 국민을 상대로 나서서 '강렬하고 적극적으로' 말하게 되고, 그것이 또 다른 시비 혹은 말실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거였다.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 분위기가 내 말을 (본질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을 어용이라고 말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죠. 그렇죠? 그래서 누구도 내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인터뷰가 계속됐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1시 30분. 노 대통령은 "이 위에 경치가 좋은 데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대통령 전용 전망대니까, 그 쪽으로 가서 더 이야기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인물연구차 취재하는 입장에서야 당연히 환영해야 하지만 좀 걱정됐다.
- 오늘 너무 많이 말씀을 하시면 피곤하지 않으시겠어요?
한 비서관이 간접적으로 '오늘은 그만' 사인을 이렇게 보냈다. "데크에서는 경치나 잠깐 보고….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해도 글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랬더니 대통령은 "괜찮습니다, 녹음기는 가져오고"라면서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