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스라엘이 대단한 것은 틀림없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너무하는 것 아닌가요?”
일행 중에서 누군가 엉뚱한 질문을 툭 던졌다.
“예루살렘 장벽도 그렇고, 여리고도 그렇고.”
잘사는 유대인들과 상대적으로 탄압받고 못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이리라.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 사람들 툭 하면 테러를 하잖아요? 그러니 이스라엘로서도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요.”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편이었다.
“이스라엘도 사실 미국이 뒤에서 봐주지 않았으면 지금 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잖아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도 다 미국과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것이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나쁜 것이 아니고, 엄밀히 따져 보면 분명히 테러를 일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잖아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일행 한 사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잖아요? 수천 년 간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신들의 땅에 갑자기 몰려들어온 유대인들이, 자기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라고 눌러앉아, 오히려 쫓겨났으니 억울할 만도 하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유대인들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잖아요? 우리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로서야 벼랑 끝 싸움이겠지요?”
그것도 그럴 것이다. 이건 두 민족 간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정당한 것 같아요.”
잠자코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이건 막연한 편들기였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쏠림 현상이야 객관적인 정당성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거 혹시 종교사대주의 아닐까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짝사랑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냉정히 판단하면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짝사랑할 이유는 없었다. 기독교의 성지가 그 땅에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더구나 이스라엘인들은 지금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절 기독교 자체의 문제일 뿐이다. 국가와 국민들의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이스라엘의 국경도시이며 휴양도시인 에일라트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시가지와 거리는 말쑥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리도 깨끗하고 휴양도시답게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 도시는 기후도 온화하고 이스라엘 땅에서는 유일하게 아름다운 홍해바다에 접하고 있어서 휴양도시이자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인근에는 안쪽으로 요르단의 아카바항과 오른쪽으로 이집트의 타바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이집트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경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해야 했다. 입국이 아니고 출국이어서인지 심사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이스라엘 지역을 안내해준 교포 가이드, 그리고 친절하고 깔끔했던 아랍인 버스운전기사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이집트 국경초소로 향했다. 이스라엘이여 안녕!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10 15:47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