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피' 나누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모였어요"

[카페 탐방 인터뷰] RH- 혈액형들의 모임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김재훈 운영자

등록 2007.10.10 15:49수정 2007.10.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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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RH- 혈액형이래요, 저 이제 어떡해요?"
“아기를 낳았는데 RH- 인거 있죠? 그래서 펑펑 울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모두 RH+ 이시거든요 근데 저만 RH- 네요, 저 친자식 아닌거 맞죠?”


이런 웃지 못할 글들이 게시판에 실제로 종종 올라오는 카페가 있다. 네이버 카페 ‘아주  특별한 사람들’(줄임 '아특사')이다.

이 모임은 사람들 중 1/1000 확률의 ‘귀한피’를 가진 RH- 혈액형 사람들이 모여 만든 카페다.

 네이버 카페 RH- 혈액형들의 모임 ‘아주 특별한 사람들’ 메인 화면
네이버 카페 RH- 혈액형들의 모임 ‘아주 특별한 사람들’ 메인 화면조광선

RH- 혈액형은 서양인(백인)에게 대략 15~20% 정도, 황인종에게는 약 0.1%만이 나올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즉 1/1000 확률로 1000명 중 한명인 셈이다. 어림잡아 웬만한 학교 전교생 중 한 명, 또는 군대 2개 대대 병력에서 한 명을 볼 수 있는 정도다.

 “저는 군대에서 혈액형이 RH-라는 이유로 ‘보호관심사병’이었어요. 또 사람들을 만나  ‘혈액형 얘기가 나와서  ‘저는 RH- 인데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오~ 말로만 듣던 RH-!‘, ‘악수좀 합시다’하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반가워 합니다.”

지난 5일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아특사’ 김재훈 운영자(닉네임:킬로이)는 ‘RH-혈액형’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카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주특별한사람들' 김재훈 운영자
'아주특별한사람들' 김재훈 운영자조광선
‘아특사’는 2004년 3월초 김재훈씨가 혼자 헌혈 봉사를 하던 중 RH- 혈액을 가진 사람들이 뭉치면 긴급상황에서 혈액을 구하느라 애간장을 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는 RH- 혈액 수혈자들에게 좀더 효율적으로 혈액을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었다고 한다.


김씨 혼자 시작한 카페는 현재 회원수가 3680명을 훌쩍 넘어섰다. 회원이 수만 명 이상 되는 카페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RH- 혈액의 희귀성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회원 숫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회원이 모두 다 RH- 혈액형인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애인, 보호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도 있기 때문.


 "RH- 혈액을 효율적으로 공급하고자 카페 개설해"

‘피’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헌혈해주세요’ 게시판에는 항상 화급을 호소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지난 8월, 정말 긴박했던 때가 있었다. 김씨는 회사직원들과 지방의 깊은 계곡에서 늦은 밤까지 워크숍 중이었는데 환자보호자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저, 밤 늦게 죄송합니다. ‘아특사’ 운영자시죠? 염치불구하고 전화드렸습니다. 저는 지금 대구 경북대 병원 응급실에서 ‘RH- O형’ 혈액형이 급하게 필요한 환자 보호자(딸) 입니다. 환자에게 일치하는 혈액이 동이 난 상태라 혈액을 못 구해 그럽니다. 경북지역 적십자사에 연락을 하고 ‘1339응급환자 정보센터’는 물론 대구지역 방송매체를 통해 방송도 했으나 도무지 혈액을 구할 수가 없네요, 운영자시라고 하니 회원들에게 비상연락 좀 해서 우리 엄마 수술 좀 받게 해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잠시후 보호자와 관련 있는 식구들(며느리, 조카)로부터 연달아 전화가 왔다. 이런 위급한 경우에는 식구들이 각자 여기저기 모든 방법을 알아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전화가 3~4통씩 온다.

낭패였다. 회원들에게 빨리 전체 비상 문자 공지를 띄워야 하는데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장소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운영스태프에게 전화 연락을 해서 문자를 공지하게 했다.

잠시 후 연락이 왔는데 정말 기막히게도 때마침 대구 경북대 병원 근처를 지나가는 카페 회원이 한명 있었는데 다행히 그 회원의 혈액형이 O형이었다. 그 회원이 자기가 가서 헌혈을 하겠노라고 연락을 해서 10분만에 병원에 도착, 무사히 혈액을 제공한 것이다.

 “그땐 우리 카페 스태프들이나 회원들 모두 정말 자기 식구일처럼 마냥 좋아하더라구요. 이럴 때 보람을 느끼고 우리 카페의 정체성이 다시 한번 확인 되는 것 같습니다.”

‘아특사’는 회비도 없고 가입 자격도 별도로 없다. 또 대부분의 카페들은 댓글을 많이 단다든가, 오프라인 모임에 몇 번 나와야 글을 올릴 수 있는 규정이 있는 것과는 달리 ‘아특사’는 정회원과 비회원의 구분이 특별히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 이유는 급하게 RH-형액형이 필요한 보호자가 검색을 해서 카페를 찾아 ‘혈액급구’ 요청을 하려는데 게시판 글쓰기에 제약이 있다면 화급을 다투는 그들이 접근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아특사’는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보낸 '긴급 혈액 공지' 쪽지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보낸 '긴급 혈액 공지' 쪽지 조광선

"'귀한 피'이기 때문에 값지게 사용되길 원할 뿐"

 “우리는 ‘순수 자원 봉사단체’ 입니다. ‘귀한 피’라고 귀한 대접을 받길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귀한 피’이기 때문에 값지게 사용되어지길 원할 뿐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귀한 피’이다 보니 보상을 받는 단체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절대 아니다. 김씨가 가장 힘주어 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평균 1년에 3~4번 정도 공혈(혈액을 제공하는 것)을 한다. RH- 공혈자들은 정기적인 헌혈보다는 응급 환자 발생시 지정헌혈(수혈자가 먼 지역에 있을 경우 공혈자가 가까운 혈액원이나 헌혈의집에서 헌혈 후 환자의 소재와 신상을 알려주면 혈액을 무상으로 보내주는 제도)을 권장한다.

혈액의 보관기간(대략 적혈구 35일, 혈소판 5일)을 감안하면 위급할 때 자신의 혈액형과 일치하는 RH- 수혈자에게 공혈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정헌혈이 있어 멀리까지 가서 공혈을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환자의 생명이 분, 초를 다투는 화급한 상황이 많이 벌어져 신속한 공혈이 필요할 때도 가끔 있다.  그럴 때 전국에 있는 ‘아특사’ 회원들이 자신의 혈액형과 맞는 환자들에게 달려가  필요한 혈액을 제공한다.

긴급하게 환자들에게 달려가려면 개인 일정 차질은 물론이고 비용까지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공혈을 하고 나면 보호자들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도 있고, 간혹 봉투를 주머니에 넣어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중히 거절한다. 그리고 “빨리 환자가 쾌유하길 빌겠습니다”고 말하고 분위기가 어색해진(?) 병원을 부리나케 나선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경황 없는 보호자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 안해도 경황 없는 보호자들 충분히 이해"

 “한번은 응급실에서 공혈을 끝내고 솜으로 혈관을 압박하고 있는데 보호자가 오셨어요. 할머니 환자의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이신데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저도 코 끝이 찡해 지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면서 항상 보람 있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노라고 말하면서 김씨의 밝았던 얼굴이 ‘썩소’가 되었다.

1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RH-혈액을 구하는 한 환자의 보호자들이 카페 여기저기에 ‘혈액 급구’ 한다는 사연을 도배 하다시피 했다. 카페 운영 스태프가 ‘헌혈해주세요’ 게시판만 제외하고 모두 지웠다. 그런 후 보호자에게 자초지종을 묻고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당신네 회원 비상연락망 전화번호가 필요한데 나한테 좀 주쇼.”
“회원 비밀사항을 어떻게 넘겨 드립니까? 저희가 비상 SMS를 공지하겠습니다.”
“왜 못 줘?, 당신네 이런 급할 때 운영하려고 이런 거 운영하는 거 아냐? 내가 00신문 기자인데, 좀 내놓지.”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카페 운영자나 스태프는 이럴 때 냉정해야 한다고 김씨는 힘주어 말한다.

 "'헌혈봉사대' 운영으로 긴급시 전국적으로 RH- 혈액 제공"

카페 회원들 모두가 공혈자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자에 한해 ‘헌혈봉사대’를 모집해서 현재 120명이 모집이 돼 있다( ‘헌혈봉사대’는 개인연락망을 제공한 회원들이고 그 외에 일반 회원들도 온라인 공지를 통해 헌혈에 참여) 이들을 중심으로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비상시 SMS로 환자의 수혈관련 정보를 보내(혈액형별 분류 발송) 비상 혈액제공 봉사를 하고 있다.

‘아특사’ 카페는 두 개의 중요한 게시판이 있는데 하나는 급하게 혈액을 구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주로 글을 써서 알리는 ‘*헌혈해 주세요’ 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나 보호자가 혈액을 제공 받고 글을 올리거나 공혈을 한 후 공혈자가 올리는 ‘*헌혈했어요 고마워요’ 이다.

많은 사람들이 RH-라고 하면 유전병인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고,  단지 사고시나 수혈을 받아야 하는 수술을 할 경우 RH+ 보다 혈액을 구하기 어려울 뿐이다.

 “나도 딸 하나 낳고 잘 살고 있고 우리 누나도 아들 둘 낳고 잘 살고 있거든요. 우리 카페 회원들은 또 어떻구요?”

(RH- 라고 혼자 끙끙하며 고민하셨던 분들 RH- 피에 관해서는 일가견 있는 분들이 이렇다고 하니 안심하셔도 될 듯.)

 김재훈 운영자를 비롯한 ‘아특사’ 스텝들
김재훈 운영자를 비롯한 ‘아특사’ 스텝들아주특별한사람들

     

'취미별 모임, 정모, 번개 등 통해 친목도 다지는 피로 뭉친 카페'

아특사’ 카페가 ‘피’ 이야기만 하는 재미 없는(?) 모임은 결코 아니다. ‘산 좋아하는 사람’, ‘요리 좋아하는 사람’ 등 각 취미 별로 소모임이 활성화되어 있고 정모, 번개, 이벤트를 통해 친목도 다진다.

오프라인 모임은 각  지역 회원별로 한두 달에 한번 꼴로 모이고 일년에 한번은 가족을 동반한 큰 모임을 가져 친목도 다지고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이번 토요일(10월 13~14일)  ‘아특사’가 모처럼 전국 회원이 모이는 일명 ‘전국대하모임’을 갖는다. 안면도에서 1박을 하면서 제철 만난 대하를 먹으며 친목을 다지고 카페 운영에 대한 회의를 할 예정이다.

혈액형은 네거티브 타입(RH-)이지만 남을 돕는데는 포지티브(양성)인 ‘아주 특별한 사람들’.  귀한 혈액을 나누며 사랑으로 봉사하는 그들이 있기에 많은 RH-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생명을 건지고, 그로 인해 기사회생한 이들이 또 다른 이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아주특별한사람들'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rhtype


덧붙이는 글 '아주특별한사람들'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rhtype
#아주특별한사람들 #RH- #조광선 #혈액형 #알에이치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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