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왕릉을 산책하자니 한여름인데 가을 같은 분위기가 났다.
조영님
이곳 명효릉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무덤이다. 주원장은 안휘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전염병과 기근으로 17세에 부모형제를 잃고 한때 떠돌이 중으로 유랑생활을 하다가, 홍건군에 가담하여 눈부신 무공을 세우고 중국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달리 말하면 떠돌이 중에서 황극의 자리까지 오른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바로 주원장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흔히 명태조라고도 하며, 재위 기간의 연호는 홍무제(洪武帝)였다.
명효릉은 1381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398년에 주원장이 이곳에 묻히고 난 뒤 1413년에야 비로소 완공이 되었으니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능이다. 명효릉은 규모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을 정도로 방대하다고 한다. 명의 왕릉이 모두 북경에 있는 반면 유일하게 남경에 남아 있는 능이다. 명 효릉은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 주원장이 죽은 후에 남경의 13개의 성문에서 주원장의 관이 동시에 나와 매장되었기 때문에 과연 이곳 종산에 주원장이 묻혔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원장의 능묘가 조천궁의 삼청전(三淸殿) 아래에 있다고 하는 설도 있고, 황성의 만세산(万岁山) 아래에 있다고 하는 설도 있었으나 이곳 명효릉의 지하에 주원장과 그의 황후 마씨가 함께 묻힌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
왕릉에는 문무방문(文武方門), 비전(碑殿), 향전(享殿), 내홍문(內紅門), 승선교(升仙橋), 명루(明樓), 보정(宝頂)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로 동서정정(東西井亭), 어주(御廚), 구복전(具服殿), 동서비전(東西妃殿)등 주요 건축물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문무방문(文武方門)이다. 여기에 특별고시비(特別告示碑)가 있는데 이색적이다. 일어, 독일어, 이태리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 등 6개국의 언어로 쓰여져 있는 이 비는 명효릉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내용이 쓰여져 있다. 1909년에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