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차용증정홍표씨의 전 재산을 빼앗아간 유일한 증거로 인용된 4억원 차용증이다. A4용지 규격인데도 불구하고, 상단 부분이 비스듬하게 약 7cm 가량이 잘려 나가 있다. 조사결과 대출서류에 첨부된 관계로 스테이플러 자국등을 지우기 위해 잘랐던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추광규
이를 위해 이씨는 정씨에게 새마을금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계속할 의사가 없던 정씨는 굳이 대출을 하면서까지 주식투자를 할 것인지 여부를 망설였다. 정씨는 고민 끝에 약속한 날 오후 4시가 넘어 마음을 결정했다. 부동산은 나중에 높은 값을 받고 팔면 되고, 일단 급한 자금은 이번 대출을 통해 일으켜 쓰자는 권유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오후 4시가 넘어 동사무소에서 해당 서류에 첨부되는 인감 등을 뗀 후 오후 6시가 넘어 이씨와 같이 법무사 사무실에 같이 갔다.
당시 법무사 사무장이던 김아무개씨는 퇴근시간이 지났다고 말하면서 급하게 서둘렀다. 김씨가 대출서류라면서 내미는 각종 서류를 자세하게 검토를 할 여유 없이 정씨는 서명을 해줬다. 인감도 첨부됐다. 완벽한 서류가 갖추어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씨가 대출서류라고 믿고 찍어준 각종 백지위임장 등은 나중에 몽땅 차용금을 위한 증서로 둔갑되었다.
정씨가 찍어준 백지에는 4억원, 7억원 등으로 각기 다른 타자기를 사용해 금액이 적혀졌다. 그것도 부족해 수정잉크 등을 사용해 수정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면지를 사용해 작성돼 있어 육안으로 보기에도 11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차용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문서였다.
그럼에도 이 두 장의 차용증은 정씨가 이씨로부터 돈을 빌려간 증거로 법정에 제출됐다. 이씨는 재판을 통해 정씨의 재산을 경매에 부쳐 돈을 가로챘다. 이씨가 제기한 1차 대여금 청구소송은 4억원이었고, 이 재판에서 승소하자 정씨는 다시 한 번 7억원의 대여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억원짜리 차용증으로 재산을 빼앗아 간후, 정씨의 격렬한 반발이 계속되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또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재판에서 이씨의 사기 행각은 재판부에 의해 밝혀졌다. 이씨가 증거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한 7억원 차용증과 앞선 재판에서 제출된 4억원 차용증이 모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대구고검은 지난 9월 7일 판결문에서 "이씨의 항소 및 당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정씨의 손을 들어 준 재판부... 차용증 위조 사실 밝혀내대구고검이 정씨의 손을 들어 준 이유는 첫째, "정씨가 이씨의 계좌에 있는 현금이나 주식을 인출할 수 있는 증권카드와 도장 등은 이씨가 계속 소지하고 있어, 정씨가 이 사건 계좌에 있는 예수금이나 주식을 다른 계좌로 인출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두 번째로 "11억원의 차용증을 작성하면서, 스테이플러 자국으로 인해 차용증 상단부의 7cm 이상을 잘라야 할 정도로 상태가 불량한 재활용 이면지를 사용한 점", "작성 시점이 이씨는 오후 4시경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나, 서류에 첨부된 인감이 발부된 시간이 법무사 사무실과 상당한 거리를 격한 지점에서 오후 4시경 발부된 사실", "이씨와 법무사 사무장 김모씨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은 점", "차용증에 타자기를 사용해 가타한 점" 등을 지적하며 차용증이 '가짜'라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의 이 사건 각 차용증의 진정성립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각 차용증은 원고(이씨)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거의 전부를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지난 6년간 벌어졌던 정씨와 이씨와의 진실게임의 전모가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