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암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속리산의 봉우리들. 동그라미 안이 문장대이다.
안병기
상고암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샛길을 타고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자 아담한 암자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 위에 비로봉을 이고 있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영산전과 산신각을 거쳐 아래로 내려오는데 스님이 먼저 말을 건넨다. 산신각에서 조금 더 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다며 한 번 가보라고 권한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산신각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가자, 스테인리스 난간이 반짝거리는 전망대가 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자, 관음봉에서 비로봉까지 속리산 봉우리들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가히 속리산 최고의 전망처라 할만 하다. 문장대에서의 조망과는 달리 봉우리들이 손에 닿을 듯하다.
날아오르라, 내 무거운 존재여. 넋이여. 한 올의 깃털같이 저 봉우리 위로 둥둥.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진 수십 폭 산수화 병풍. 저 산수화 속을 다 거쳐 이곳에 이른 나라는 존재가 우화승천하는 듯한 기분이다. 정말 바빠서 속리산을 샅샅이 구경할 시간이 없다면 이곳에 올라 저 봉우리들을 잠시 바라보다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법주사로 내려가는산길로 돌아온다. 등산객 사이에서 아이 하나가 울면서 내려오고 있다. 아까 보았던 아이 가운데 하나다. 아마도 다리가 아파서 우는 모양이다. 아이야, 울음 울지 않으면 세상은 네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법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울음으로써 세상을 배우는 거란다.
오후 6시. 법주사에 도칙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뭔가 아쉬워 다시 법주사 경내로 들어선다. 이 시간이면 사천왕문에 계신 다문천왕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 몇 소절을 얻어 들을 수 있을까. 노래를 청하는 내게 무정한 다문천왕은 일절 대꾸하지 않고, 대신 천왕문 안쪽에 자리한 커다란 어둠이 자꾸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어서 속세로 돌아가라고, 거기서부터 삶 속으로 가는 여행을 또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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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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