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받은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의 역사를 기록한 설명문.
김성호
문화재 인종차별의 상징,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박물관에서 오른쪽에 있는 신전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세모꼴의 건물에 있는 안내문에는 그레이트짐바브웨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도 단지 아프리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럽 백인에 의해 부정당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아프리카가 서구제국주의에 의해 약탈당할 때 아프리카 사람 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적지도 차별당하는 이른바 ‘문화재 인종차별’의 아픔을 그레이트짐바브웨는 간직하고 있었다.
영국이 식민지배하던 로디지아 시절 백인들은 그레이트짐바브웨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고대 그리스의 솔로몬 왕과 예멘의 시바의 여왕의 왕국이나 고대 지중해의 페니키아인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나무와 흙을 주로 사용하던 아프리카에서 돌만을 사용하고, 자연지형을 이용해 쌓은 아크로폴리스 유적지 등 뛰어난 건축물을 아프리카인들이 건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의 유적이라고 우긴 영국의 이런 태도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찾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짐바브웨는 예전부터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통치는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논리이다.
일제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인 임나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백제와 신라, 가야를 식민지로 삼아 지배 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왜곡해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은 것이나, 중국이 고구려에 대해 동북공정, 티베트에 대해 서남공정, 신장위구르에 대해 서북공정, 내몽골에 대해 북방공정을 통해 이들 모든 지역의 옛 국가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에 불과했다는 역사왜곡 작업도 마찬가지다.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에 앞서 역사 왜곡을 통해 식민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떠난 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역사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신화나 전설까지도 빼앗거나 조작하고 왜곡했다. 호주의 원주민 지도자인 갈라르우이 유누핀구(Galarwuy Yunupingu)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땅이 내 땅인 이유는 내가 이 땅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다.”옛날에 땅의 주인이 누구였느냐는 현재의 소유권 분쟁에서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는 이미 16세기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 해안에 진출했던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포르투갈 역사가인 바루스(Joāo de Barros)는 1552년 그레이트짐바브웨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들로 만들어졌으며, 사이사이에 모르타르를 바른 흔적도 전혀 없는 정사각형의 요새가 있다. 이 건물은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언덕 위 모르타르 없이 돌로만 만든 또 다른 건축물 들 중에는 높이가 20m이상 되는 망루도 있다고 한다.'놀랄 만치 정확한 설명이다. 포르투갈인들은 당시 직접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를 본 것은 아니고, 짐바브웨를 비롯한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무역을 하던 스와힐리 이슬람 상인들로부터 듣은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