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전통 초가돌담길과 함께 제주의 전통 초가가 그대로 남아있다.
장태욱
잣동네에는 말방아와 더불어 제주의 전통 초가가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은 '안거리'와 '밖거리' 로 이루어진 '두거리집'이다. 거기에 가축이 기거하는 목거리가 부속으로 갖춰져 있다. 안거리에는 주로 어른이 살고, 밖거리에는 결혼한 자녀가 살았던 것이 보통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난했던 우리 가족이 남의 집 '밖거리'에 세 들어 살았었다.
이 마을에 남아있는 초가는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주위 벽은 현무암으로 쌓아 두르고 흙을 발라 붙여 만든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초가의 벽이 토담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바람과 돌이 많았던 제주에서는 토담 대신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흙으로 마무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붕은 띠풀로 덮고 그 위에 띠풀을 꼬아서 만든 밧줄로 바둑판처럼 단단히 동여매었다.
그런데 1520년 제주에 유배된 충암 김정(金淨)은 금강사 옛 절터에서 제주풍토록을 기술하였는데, 김정의 풍토록에는 1500년대 당시 제주의 가옥에 대한 설명이 남아있다.
'사람의 주거는 모두 띠로 엮어 덮은 것이 아니라 지붕에 나란히 펴서 쌓고 긴 나무로 가로 눌러 맺는다. 기와집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품관인의 집 이외에는 온돌이 아닌데,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돌로 메우고, 그 위에 흙으로 발라서 온돌 모양처럼 하고 말린 후에 그 위에 잔다.'이 풍토록에 의하면 16세기 제주인들은 이 초가집보다 훨씬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태풍 피해 복구되면 주민들 지혜 모아 자연 문화유산 잘 활용될 수 있게 됐으면...하가리에는 현재 165가구에 41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이다 보니 전국의 대부분의 농촌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인구는 감소하여 초등학교는 분교(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로 된 지 오래고, 남아있는 주민들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인접한 고내리는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하가리는 농외 소득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