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옥수수는 너희들 몫으로 남겼지"

[포토] 물골 할머니의 자식사랑법

등록 2007.09.26 15:36수정 2007.09.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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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물골 할머니의 환한 웃음 자식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어머니,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런가?

물골 할머니의 환한 웃음 자식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어머니,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런가? ⓒ 김민수

▲ 물골 할머니의 환한 웃음 자식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어머니,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런가? ⓒ 김민수

 

"아니, 할머니 아직도 옥수수가 이렇게 많아요?"

"아, 자슥들 주려고 늦옥수수 심었제. 추석에 맞춰 따면 집으로들 가져가고 좋지."

"맛있겠네요?"

"그렇게 맛있어 보이면 서울양반도 꺾어서 드시유."

 

가을하늘을 찌를 듯 옥수숫대는 높았다. 총총한 옥수숫대 사이를 오가며 잘 익은 옥수수를 꺾는 물골할머니의 손놀림이 바쁘다. 내가 막 물골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추석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손주손녀를 데리고 물골에 찾아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난 뒤 돌아갈 준비들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물골이 북적거린다. 잔치의 흔적을 더듬어보면서 물골할머니의 자식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옥수수를 따는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바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다. 다듬은 옥수수를 망에 담아 차에 싣고 하나 둘 떠날 때 마다 서운한 마음이 조금씩 베어나온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열린 옥수수종자

 

a 옥수수종자 내년에 심을 옥수수 종자들이 이미 풍성하게 처마밑에 달려있다.

옥수수종자 내년에 심을 옥수수 종자들이 이미 풍성하게 처마밑에 달려있다. ⓒ 김민수

▲ 옥수수종자 내년에 심을 옥수수 종자들이 이미 풍성하게 처마밑에 달려있다. ⓒ 김민수
 
"할머니, 옥수수종자를 무척 많이 남기셨네요?"
"저 정도는 심어야 추석때까지 꺾어줄 수 있지유. 여름부터 가을까지 올 때마다 따서 보내는 재미도 좋고. 우리 아이들이 옥수수를 좋아하거든."
"저도 무진장 좋아하는데."
"서울양반, 내 거기것도 많이 남겨놓았은께."
"제 것도요?"
"그려, 일년 살다보니 자식들보다 더 많이 왔으니 자식같제."
 
할머니는 추석음식을 하나 둘 차려서 먹어보라고 내어놓고는 가마솥에 옥수수를 삶기 시작했다. 올해 작지만 물골에 농사를 지면서 이런저런 맘고생을 많이 해서 내년에는 농사를 짓지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그 다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서울양반, 저기 밤나무 아래 가봐. 밤 많아. 뱀이나 말벌집 있을까봐 우리 영감이 풀도 다 쳐놨으니까 많이 주워가."
"저희들 몫까지 남겨두셨어요?"
"줍는다고 다 먹나? 금방 벌레 먹는 걸, 그리고 다람쥐 먹이로도 남겨둬야지."
 
밤나무 아래에 서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알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손이 달만한 나뭇가지에도 아람든 밤송이들이 보물을 품에 안고 가을빛에 까딱거리며 졸다가 품었던 알밤을 놓친다.
 
a 자식들에게 줄 옥수수를 꺾는 물골할머니 늦옥수수는 알맞게 잘 익어 쪄내니 쫀득쫀득했다.

자식들에게 줄 옥수수를 꺾는 물골할머니 늦옥수수는 알맞게 잘 익어 쪄내니 쫀득쫀득했다. ⓒ 김민수

▲ 자식들에게 줄 옥수수를 꺾는 물골할머니 늦옥수수는 알맞게 잘 익어 쪄내니 쫀득쫀득했다. ⓒ 김민수
 

옥수수의 키가 제 아무리 커도 어머니 사랑만 할까

  

한 해가 되기도 전에 쑥쑥 자라 가을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옥수수, 그 총총한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꺾는 할머니의 키가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옥수수의 키가 제아무리 커도 어머니의 사랑만 하지 않을 것이요, 옥수수 알갱이가 아무리 실하게 여물었어도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만 못할 것이다.

 

"자식들이 다 가니 쓸쓸하세요?"

"아녀, 이제 품에 안고 살믄 되고, 영감생일, 설날 뭐 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보니께. 너무 자주봐도 그려."

"피곤하실텐데 좀 쉬셔야지요?"

"메밀배추전은 특별히 만든거니까 다 드시고, 옥수수는 딱딱해지면 다시 쪄서 먹으면 부들해진다우. 그리고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밤이 별로 맛이 안나. 찐밤보다는 날밤 까먹는게 더 맛나. 아니면 냉장고에 좀 넣었다가 먹든지. 그런데 벌레 먹은 것은 이틀만 지나면 먹을거 없으니까 미리 삶아 먹고."

 

마치 자식들에게 살림살이를 가르치시듯 한다. 할머니의 산소에 올라가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그 어느 것보다도 높고, 깊고, 넓은 어머니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는 것이니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a 물골할머니 꺽은 옥수수를 손질하여 가져가기 좋게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운다.

물골할머니 꺽은 옥수수를 손질하여 가져가기 좋게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운다. ⓒ 김민수

▲ 물골할머니 꺽은 옥수수를 손질하여 가져가기 좋게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운다. ⓒ 김민수
 
준 것은 잃어버리고, 주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어머니들
 
"할머니, 옥수수 따서 다 주고 나면 아깝지 않으세요?"
"아깝긴, 어차피 영감하고 둘이 다 못먹을테고, 안 그러면 쇠죽으로 다 먹일텐데 뭐. 그러고 자식들 한테 주는거 아깝다고 하는 부모가 있나?"
"그러네요. 늘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 하시는 것이 부모님들의 마음이라고 하데요."
 
그랬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준 것은 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가 보다.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면 늘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대한 이야기들만 있다. 그러고보니 나도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늘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불효자식일 수밖에 없다. 자식은 늘 불효자인가 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a 물골할머니 환한 웃음은 미륵불을 보는 듯 하다.

물골할머니 환한 웃음은 미륵불을 보는 듯 하다. ⓒ 김민수

▲ 물골할머니 환한 웃음은 미륵불을 보는 듯 하다. ⓒ 김민수
 
나는 목사고, 할머니는 갑천에 있는 작은 교회를 출석하시는 권사님이시다. 그런데 그 웃음을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미륵불'을 보는 듯하다고 밖에는.
 
그렇게 자식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물골에도 밤이 왔다. 구름이 간간히 끼어있긴 하지만 보름달이 떴고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온다. 풀벌레 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보름달도 높아지고 물골은 달빛에 물들어 수묵화 속에 들어있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그 곳에 있었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걷기도 하고, 작은 실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물골 노부부는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을 30분 앞두고, 물골에서 나왔다. 아파트와 콘트리트에 묻혀버린 고향, 그 곳을 떠나 고향 아닌 고향을 다녀오는 길임에도 긴 귀경행렬 속에 나는 고향에 다녀오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 막히는 것도 고향가는 맛, 돌아오는 맛의 하나인 것 같다. 오랜만에 나도 고향을 다녀오는 기쁨을 맛본 추석이었다.
덧붙이는 글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물골 #옥수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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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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