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산해진 구로시장의 옷가게 거리. 옛 추석 때면 길을 지나기가 힘들 정도 였다.
나영준
각종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앞다투어 자리 잡은 가산디지털단지역(옛 가리봉역) 부근. 상전벽해다. 우뚝하고 번듯한 최신 건물들. 점심식사를 마친 이들이 다국적 커피업체 앞 분수대에서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꼬마야, 이리 와. 누나들이 아스께끼 사줄게."문득 그녀들의 포근한 손길이, 투명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잡힐 듯 하다. 70년대, 짧은 점심을 마친 여공들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수백 명이 공장 입구에 모여 '아이차'를 빠는 것이 고작. 그래도 누나들은… 웃었다.
가리봉역에서 구로시장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 버스를 타도 된다. 많은 이들은 걸었다. 추석을 앞둔 구로시장 입구.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의 물결이었다. 입구에는 모자나 신발·허리띠 등을 팔았다. 흥정이 시작된다. 그 곳을 지나 좌회전하면 최종 목표, 옷가게 들이 기다린다.
"그 때 대단했지. 돈을 펴거나 셀 틈이 없어서 그냥 궤짝에다가 처박았다니까. 70년대 후반 우리 가게 매상이 명절 때면 200만원 이상이었지. 한 때는 남대문·동대문 다음 구로시장이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다 고향에 선물 사가려는 여공들 덕분이었지."어린 시절 집이 구로시장에서 옷가게를 했다던 친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혀를 내두른다. 그녀들은 가족을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어머니를 위해 두툼한 겨울점퍼를, 오빠를 위해 멋들어진 코트를, 동생에겐 실용적인 '추리닝'을 고르곤 했다.
"야야, 니는 뭘 그래 많이 사는데? 가스나, 핑소엔 그래 짠순이 짓 해쌓더니."
"옴마, 넘 말하네. 그라는 니는 고향에 숨겨놓은 서방 있는 거 아녀? 이거 죄다 남자 옷 아닌가?"화장기 없이 질끈 동여맨 머리. '처녀'라기보단 '소녀'에 가까운 그들. 하지만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세상살이의 노곤함과 처연함에 지친 일상. 그래도 명절을 앞두곤 모처럼 활짝 웃었다.
그녀들의 고픈 배를 채워주던 구로시장 떡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