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가득한 그곳, 스토리텔링 어떨까?

[상해 항주 소주 남경의 8박 9일 여행기] 소주의 호구(虎丘)

등록 2007.09.26 16:36수정 2007.09.2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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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한산사를 둘러보고 호구로 이동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짐을 보관하는 곳이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옷 보따리와 책, 여행지에서 산 작은 선물들로 가득 찬 베낭을 어깨에 매고, 거기에다 무슨 사진 기자처럼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니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행가방을 가볍게 싸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당장 카메라도 슬림형으로 교체해야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나면 양 어깻죽지가 빠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마치 '고행(苦行)'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짐을 맡기고 가벼운 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걷자니 절로 신바람이 났다.


오늘 답사하는 호구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곳은 춘추시대 때 오왕 합려(闔閭)가  행궁을 지었고, 합려가 죽은 뒤에 그 아들 부차가 아버지를 묻은 곳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장례를 치른 삼 일 뒤에 흰 호랑이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호구(虎丘)'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무덤이기 보다는 차라리 작은 언덕 같다. 

 단량전 너머 동양의 피사탑이라고 하는 호구탑이 보인다.
단량전 너머 동양의 피사탑이라고 하는 호구탑이 보인다.조영님


육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단량전(斷梁殿) 안에는 '대오승양(大吳勝壤)'과 '함진장고(含眞藏古)'라고 쓰여진 현판이 눈에 띈다. 단량전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자 '감감천(憨憨泉)'이라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양대(梁代)의 고승인 감감이 샘물을 얻으려고 맨손으로 샘물을 팠다. 그 정성이 너무도 기특하여 정성에 감동한 하늘이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을 내려 주었다."

사계절 마르지 않은 샘물은 수질이 아주 좋다고 하며, 눈 먼 사람이 이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을 뜨게 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덧붙여져 전하고 있다.


감감천 샘을 지나자 오른쪽에 '시검석(試劍石)'이라는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 있다. 바위 덩어리 중간이 쩍 갈라져 있다. 마치 칼로 자른 것 같은 흔적이다. 답사오기 전에 미리 칼로 자른 바위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아들은 마치 손에 칼이 쥐어져 있는 듯 바위를 향해 연신 '얍얍' 고함소리를 지르면서 자르는 흉내를 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쳐다보고 간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바위 덩어리가 쩍 갈라져 있는 '시검석'이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바위 덩어리가 쩍 갈라져 있는 '시검석'이다. 조영님

"옛날 월나라에 구야자(歐冶子)라는 장인이 명검을 만들어 월왕에게 바치자, 오왕 합려도 간장이라는 장인에게 명검을 만들게 하였다. 간장의 아내는 막야인데 역시 장인이다. 간장이 오왕의 명을 받고 칼을 만드는데 철즙이 흐르지 않자 막야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용광로 속에 집어 넣으니 철즙이 흘러서 칼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칼 이름을 하나는 간장이라 하고 하나는 막야라고 하였다. 그래서 두 개의 검을 '자웅검(雌雄劒)'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간장의 아내인 막야가 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 용광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고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을 간장이 합려에게 바치자 합려가 당장 칼을 시험하기 위해 돌을 내리쳤는데 두 조각이 났다고 한다. 그 당시 조각난 바위가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유사 이래 최고의 라이벌 중의 하나가 오나라와 월나라가 아닌가 싶다. 대를 이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복수극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쏠쏠한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오월 시대 대표적인 미인은 서시(西施)다. 서시의 미모에 푹 빠진 오왕 부차는 결국 월나라 구천에게 나라를 잃게 되고 자신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역사의 흐름도, 인생의 흐름도 바꿔 놓을 수 있는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은 바로 권력남(權力男)과 미녀가 아닌가 싶다.

다시 조금 걸어가니 베개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침석(枕石)'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가 보인다. 돌을 던져서 바위 위에 떨어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을 수 없는 전설을 생각하며 실없이 돌을 던져 본다.

 천인석 앞에 호구검지라고 붉게 쓴 글씨가 보인다.
천인석 앞에 호구검지라고 붉게 쓴 글씨가 보인다. 조영님

수십 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평평하고 널직한 바위 덩어리인 '천인석(千人石)'이 있다. 양대(梁代)에 유명한 고승인 도생(道生)이 이곳에서 설법을 하자 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천인석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서 일찍이 추사 김정희는 "봄바람 가는 돛에 꿈을 의탁하려 하네. 나를 싣고 천인석을 향해 갈 수는 없는지.(歸帆欲託春風夢 載向千人石上無)"라는 시를 지었다.

천인석 정면에는 '검지(劍池)'가 있다. 붉게 '호구검지(虎丘劒池)'라고 커다랗게 쓴 글씨가 눈에 띤다. 오왕 합려를 연못 아래에 장사 지낼 때에 보검 삼 천 자루를 함께 매장하였기에 검지라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수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월왕 구천과 진시황, 손권 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보물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검지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있는 연못으로, 가운데에서 샘이 솟아나 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벽면에는 크고 작은 글씨들이 쓰여져 있다. '풍학운천(風壑雲泉)'이라고 쓴 큰 글씨는 송나라의 유명한 서법가인 미불(米巿)의 필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한 사람의 필체 같은데 '호구검지'의 네 글자 중에 '검지(劍池)'라는 두 글자는 안진경의 필적이라고 하고 앞의 '호구(虎丘)' 두 글자는 후대 사람들이 썼다고 한다. 그래서 '가호구(假虎丘) 진검지(眞劍池)'라는 말이 전한다고 한다.

 이곳이 오왕 합려를 장사 지낸 곳이다. 보검을 함께 묻었기에 '검지'라고 한다.
이곳이 오왕 합려를 장사 지낸 곳이다. 보검을 함께 묻었기에 '검지'라고 한다.조영님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쌍정교(雙井橋)를 지나니 운암사탑(雲岩寺塔)이 보인다. 팔각형 모양의 7층 호구탑은 북송 건륭 2년(961년)에 완공되었는데 한쪽 면이 약 2.48도 기울어져 있어서 동양의 피사탑이라고 불린다. 이 탑은 당송 시기에 '동남의 명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였으나 수 차례의 전란과 더불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는 호구탑은 대부분 청 말기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소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하였으나 1층까지만 볼 수 있게 통제하고 있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호구는 아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먼 옛날 이야기니 시시비비를 논할 필요는 없다. 어른들에게 심드렁한 이야기도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전설이지 않은가.

 소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호구탑이다.
소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호구탑이다.조영님


오월의 이야기는 이미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와 구미에 맞게 재미있게 재개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유서 깊은 소주에서의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오늘밤은 또 어디에서 자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 소주 시내로 들어갔다.
#소주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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