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안양뉴스> 창간호.
이민선
<월간 안양뉴스> 는 3명의 무모함(?)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디자인을 전공한 이철우씨는 나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인쇄업체 '학림사'를 운영하는 강찬희씨는 글쓰기 좋아한다는 것이 인연이 되어 종이 신문 발간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리 많은 돈이 들지는 않겠는데요."
이 말을 듣고 종이 신문 만들 계획에 돌입했다. 인쇄전문가 강찬희씨가 계산기를 몇 번 두드린 후 이렇게 말했다. 지역신문 창간 할 때, 후원회를 모집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수익 사업을 해서라도 자금을 끌어 모은 다음 시작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그러나 우린 그런 과정 생략하고 일단 한번 해보자는 정신으로 발간 작업에 돌입했다.
후원회 모금 통장은 몇 달 전에 개설해 놓았다. 그렇지만 <월간 안양뉴스> 발간 계획을 세울 당시 통장 잔고는 거의 바닥이었다. 모금 하기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다보니 모금이 이루어 질 리 만무했다. 시간도 없었다. 후원 인을 모집하려면 시간을 내서 후원금 내줄 만한 인사들을 만나야 하는데 내겐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월간 안양뉴스> 탄생 전날 가슴이 두근두근"신문에 미치면 할 수 있다" 는 <수원시민신문> 김삼석 대표의 한 마디에 힘을 얻어 1년 전인 2006년 8월경부터 인터넷 <안양뉴스>를 시작했다. <안양뉴스> 첫 기사는 2006년 8월22일에 올린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한 통일 노래자랑'이란 제목의 문화 관련 기사다. 그 후 지금(2007년9월22일)까지 797꼭지의 기사를 올렸다.
처음 6개월간은 독자들의 참여가 거의 없는 개인 홈페이지처럼 운영됐다. 대부분의 기사를 혼자 쓰다 보니 내용도 빈약했고 혼자만의 생각만 묻어나기에 고독하고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안양뉴스>가 고독한 신문에서 한발 벗어난 것은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조) 안양지회장 장윤호 선생 글이 올라오면서 부터다.
지난 2007년 3월16일, 장 선생은 '학운위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안양뉴스>에 투고했다. 교육현장에서 바라본 학운위(학교운영위원회) 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현직 교사가 작성했다는 것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4월 16일에는 '치맛바람도 차별도 없는 학교를 꿈꾸며'라는 제목의 기사가 <안양뉴스> 에 올라왔다. 갓 학교운영위원장이 된 학부모의 담담한 심정과 각오가 담긴 글이었다. 이 기사를 쓴 것은 바로 나다. 학부모 입장에서 바라본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에 대한 소회를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 하려고 애썼다.
<안양뉴스> 에 실린 '학운위' 관련 기사는 방송과 인연을 맺게 해 주었다. 안양방송 권보형 작가 눈에 띄어 장 선생과 난 5월 4일 'ABC포커스'라는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학운위 관련 기사와 방송이 나간 후 격려와 애정 어린 관심을 표현 하는 분들이 대다수 였다.
반면, 항의성 전화를 한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운영위원을 해 본경험이 있는 학부모였다. 기사와 토론회에서 밝힌 것은 학운위 에서 학부모가 차지하는 역할 과 비중 그리고 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다. 어째서 학부모가 내 말이 틀렸다고 항의 전화를 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