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관 "이명박 '마사지걸' 발언, 국가적으로 부끄런 일"

등록 2007.09.19 17:24수정 2007.09.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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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순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19일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올려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걸' 발언과 이에 대한 해명과정,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언론사 편집국장들의 침묵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다음은 글 전문이다. [편집자말]
여성에 대한 '기회'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이명박 후보의 부박한 여성관을 우려하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마사지 걸'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예쁜 여자보다 그렇지 않은 여자를 골라야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한다"며 이를 '인생의 지혜'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실망을 넘어 충격입니다.

물론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있습니다. 저도 차마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 후보에 대한 지지나 선호 여부를 떠나 국가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 후보의 여성관입니다. 처음에는 "밥 먹으면서 농담으로 한 얘기(여성 대변인)"라고 했다가 이틀 뒤 "발마시지를 말하는 것으로, 성매매 업소와는 상관이 없다(남성 대변인)"고 해명했습니다. 발마사지 업소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요.

여자라는 이유로, 실력보다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게 기회균등

이 후보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용모 기준으로 '일하는 여성'을 판단하는 여성비하적 발언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장소가 아닌 발언의 내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담긴 여성의 상품화·대상화의 문제를 장소의 문제로 바꿔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 17일 여성단체에 보낸 답변서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여성으로서 더더욱 참기가 힘듭니다.


도대체 무슨 기회가 골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것인가요. 여성을 예쁜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나눠 차별없이 골고루 기회를 주겠다는 뜻인가요? 예쁜 여성은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혜택이 있으니까 기회를 제한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뭔가 혜택을 줘서 기회를 균등하게 주겠다는 것인가요.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성의 기회균등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는 것입니다. 실력보다 외모로 판단받지 않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그럼으로써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되는 여성비하 발언... 여성문제에 대한 본질적 고민 없어

우리가 이 후보의 해명에 실망하는 이유는 그런 여성문제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경륜하겠다고 나선 것에 걸맞은 우리 사회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발견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입니다.

이 후보의 여성 비하 발언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1월에는 "애를 낳아본 여자만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며 여성 정치인을 공격했습니다. 8월경선 연설회 당시엔 '관기'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태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하와 모독의 수준만 높아졌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발언들에 본질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 후보가 정녕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과 '성의' 없는 임기응변의 변명만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 후보의 아주 중요한 자질이라고 봅니다. 여성에 대한 뒤틀린 인식, 성에 대한 천박한 개념, 여성의 기회와 균등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이끌 때 한 나라의 여성정책은 암담해집니다. 아니, 여성들이 암담해집니다.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담합니다. 검증은커녕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술자리에 합석한 편집국장들은 '비보도 약속'을 이유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대선 후보의 여성인권 침해행위에 눈감는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술자리 농담으로 치부하는 여성 보좌진과 언론의 침묵도 문제

이 후보가 이번엔 달랐으면 합니다. 잘못에 대한 성의 있는 해명과 솔직한 사과, 그리고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그게 대한민국 여성에 대한 도리입니다.

혹여 이 후보가 그럴 용의가 없다면 이 후보를 보좌하는 많은 여성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성적 수치심도 없이 술자리 농담쯤으로 치부하며 침묵하는 것은 관용의 문제가 아닙니다. 포용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존재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려고 정치를 시작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려고 나라를 경영하려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라면 그리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릇된 여성관을 가진 남성의 일탈을 주변 여성들이 침묵한다면 그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땅의 여성은 그래서 힘듭니다. 그래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딸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후보께서 뉘우칠 용기가 없다면 옆에 계신 여성들이 용기를 내 이 후보에게 사과하라고 권하시기 바랍니다. 한 여성 공무원의 간곡한 당부를 무겁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청와대 #마사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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