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분 고민하다 이웃집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언덕 위에서 시끌벅적 파티를 열고 있는 이탈리아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여유있게 대꾸합니다.
그러는 중에 한 여성이 다가왔습니다. 작은 마을에 응급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로이스(Rois)란 중년 여성입니다.
"음, 저 교회는 말 그대로 누구라도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문을 잠그지 않는 거죠. 하지만 혹시 당신이 불편하다면 오늘 우리집에서 자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이로써 교회에 대한 의문은 눈 녹듯 풀어졌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중에 그 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나 어찌된 연유인지 풀 스토리를 들어보기로 작정하고 일단 그녀의 제안에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하룻밤 묵기로 했습니다. 짐을 정리 한 후 그녀가 저녁 먹으러 다운타운에 가자고 합니다.
"그냥 있는 걸로 대충 먹어도 될 것 같아요. 굳이 다운타운까지."
"아니에요. 당신은 오늘 나의 손님이니 내가 책임을 지어야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기운 차려야죠."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 맛있는 음식 앞에 사뿐히 즈려밟고 마을과 사람 구경도 할 겸 생기넘치는 발걸음으로 나갑니다. 시끄러운 듯 조용한 팝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어딜 가나 무난한 맛으로 제공되는 치킨메뉴를 주문합니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의사인 브로커링(brokering)이 우리 쪽으로 다가옵니다. 로이스와 친한 사이 같더군요. 브로커링은 로이스에게서 내 얘기를 듣더니 단번에 식사를 사겠다고 제안합니다. 오호~ 그대 쿨한 멋쟁이!
그 인연으로 나를 테이블에 초대해 와 즉석에서 세 팀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이들은 다들 의료진들인데 주말엔 이 마을에 와서 진료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전문적인 종합병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직업군에 있어서인지 다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브로커링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유머스럽고 참 자유분방합니다. 종업원이나 처음 본 손님과도 농담을 나누며 유쾌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손님과 손님끼리, 손님과 종업원끼리 처음 만나는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거리낌 없이 농담하고 신체 접촉을 합니다. 물론 친근감을 표시하는 투로 말입니다.
"이봐, 로이스 내게 '사.랑.해.요.'라고 말해 봐."
놀랍게도 브로커링이 정확하게 한국어발음을 합니다.
"싫어요."
그간 브로커링의 장난에 많이 당했던지 로이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괜찮아요. 그거 아주 아름답고 좋은 말이에요."
내가 옆에서 아주 순진한 얼굴로 바람을 넣습니다. 그러자 로이스는 내 눈치를 보더니 '사랑해요'라고 브로커링에게 대답합니다.
"와, 정말? 여러분, 로이스가 절 사랑한대요! 유후~."
"'사랑해요'라는 한국말은 영어로 'I LOVE U'라는 뜻이에요."
브로커링의 익살스런 장난과 내 설명이 이어지자 로이스는 또 당했다는 표정으로 기분 좋게 웃어 넘깁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일할 적에 같이 일하는 한국인 간호사들에게 이 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봐요 브로커링 씨. 혹시 '사랑해요'가 아니라 '사양해요' 아니었어요? 나는 당신을 사양합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요?"
발음이 비슷한 문장에 대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집니다.
"아마 제 생각엔 간호사들이 '난 당신을 사랑해요'가 아니라 '사양해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사양해요는 뭐 '난 당신을 거부합니다' 이런 뜻이죠."
내가 던진 농담에 브로커링을 제외한 모두가 일제히 폭소를 터뜨립니다. 그리고는 다들 내 편이 되어줍니다.
"브로커링씨, 갈렙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당신 착각한 거 아니에요? 호호."
브로커링은 절대 아니라며 우기면서도 이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맥주가 무료!' 가게 안에 광고가 시선을 확 잡아끕니다. 하지만 밑에 설명을 보고선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단, 80세 이상인 사람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함'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옆에는 또 '우리는 문제가 생겨도 절대 경찰을 부르지 않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씌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그림으로 '총'을 그려 넣었습니다. 미국 특유의 유머스러움이 이 작은 마을에도 넘쳐납니다.
"그런데 갈렙은 언제 여길 떠나요?"
"글쎄요. 제가 더 머물러야 할 공간이 없어서요. 로이스가 오늘은 도와주었지만 내일은 아마 산을 내려가지 않을까…."
"음, 그렇다면 우리 모텔로 와요. 제가 초대할께요. 하루 더 머무르면서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그래요."
함께 있던 테리(Terri)가 즉석에서 제안해 왔습니다. 이럴 땐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록키산맥 깊숙한 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산장 같은 모텔을 경영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더군다나 내일은 모텔에서 파티가 열린다고 하니 심히 기대가 됩니다.
"그럼 내일도 갈렙을 볼 수 있는 거로군.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내일 거기 갈 테니 갈렙도 와서 함께 즐겨요."
그가 산타클로스를 닮았다는 나의 말에 또 한 번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고, 장본인인 브로커링이 반갑게 파티 초대를 환영합니다.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두가 이 만남의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계산서를 본 젊은 남자가 소리 소문없이 지갑을 꺼내 듭니다.
"아니, 왜 그래? 내가 낼게. 내가 갈렙 꺼까지 내려고 했던 참이야."
브로커링의 과장된 몸짓에 젊은 남자가 정색하며 대꾸합니다.
"아니 난 그냥 내 카드 잘 작동되는지 카운터에 체크해 보려구요."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지고 결국 그 남자가 모두의 음식 값을 지불하며 즐거웠던 저녁 식사를 마무리 합니다.
예기치 않게 들른 작은 마을에서의 보게 된 오픈 마인드의 교회와 즐거운 저녁 식사 그리고 파티 초대. 당장 죽겠다고 입이 1m는 나올만큼 가는 길이 힘들긴 하지만 항상 풍선보다 더 부푼 가슴속에 이런 에피소드들로 짜릿한 감동을 안겨주는 록키산맥이 난 참 좋습니다.
"록키야, 격하게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2007.09.18 12:0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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