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찌질이라 하는가

찌질이를 만들어 내는 심리는?

등록 2007.09.17 17:10수정 2007.09.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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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레이싱 모델 포털사이트는 '찌질이 자가 진단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런 게 있었다. '모델이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 때, 내가 들어가서 말을 걸면 모델은 반가워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사진 촬영 시, 모델에게 나를 봐 달라고 큰 소리로 떠들면서 촬영한다'는 항목이다.


'자가 진단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레이싱 모델 찌질이'라고 한다. '모델들이 사진 촬영을 거부하다가도,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해준다고 생각한다'라는 항목에 해당되는 이는 찌질이 중에 중증이겠다.


'찌질이'는 인터넷에서 최대의 욕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찌질이'의 사전적 뜻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다. 없어 보이거나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지질지질한 이', 곧 '지질이'의 속어다. 보잘 것 없고 변변치 못하며,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유치한 행동이나 말의 심한 이들을 가리킨다, 코나 찌질거리는 아이에서 비롯한 탓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 외에 실제 용례는 더 다양하다.


드라마 <봄날>의 캐릭터를 분석한 평자들은 어머니의 품이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은섭(조인성)을 '찌질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찌질이는 매우 수동적인 특성을 보인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한 인터넷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맞아. 내가 아까 그랬잖아. 걔네는 굉장히 진취적인 거 같고, 우리는 찌질이 같다고."


이렇게 보면 찌질이란 진취적이지 않은 이들을 말한다. 소극적인 성향은 남의 주장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찌질이'들이나 하는 짓이 바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도 펴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것"(오마이뉴스, 2006. 11. 8)이다. 나아가 "결단력이 없고 말썽만 피우는 이가 '찌질이'"(헤럴드경제, 2006. 10. 19)다.


그들의 외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겠다. 어느 매체에 실린 <막돼먹은 영애씨>에 관한 가상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아우 정말, 훈남은 얼굴값을 하고 찌질이는 꼴값을 한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어요."


찌질이는 얼굴값을 못한다. 얼굴값이 없기 때문이다. 값이 있다면 꼴값뿐이다. 못생기거나 형편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격에 안 맞게 껄떡댄다는 말쯤이다. '저기녀 신드롬'을 다룬 기사(스포츠서울, 2006. 7. 1)에는 "소개팅·미팅에 나가봤자 키 작고 배나온 '찌질이'들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라는 표현이 있다. 역시 찌질이의 외모는 영 아닌가 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소녀상은 무엇일까? 드라마를 분석한 한 매체의 분석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찌질이 남학생을 괴롭히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겁없이 나서서 그러지 말라 호통치던 당돌하고, 예쁘장한 여자 반장 아이를 기억하는가?"


찌질이는 대개 남학생이다. 이들은 항상 남에게 당하는 이들이다. 다른 이들을 공격하거나 괴롭히는 존재는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이상향의 여학생은 당돌하고 적극적이면서도 예쁜이다. 물론 찌질이가 반장 같은 직책을 맡을 리도 없다.


영화 <싸움의 기술>을 리뷰 한 어느 글에서는 "영화는 날마다 맞고 사는 '찌질이'의 비애와 복수극을 그린 남고괴담이다"라고 평가했다. 찌질이는 맞고 다니는 남학생을 연민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찌질이들이 모이는 장소도 항상 힘에 밀리는 모양이다. <경북매일신문>의 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청소년들 사이에 이른바 일진은 초등학교, 이진은 공터, 소위 '찌질이'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은 오락실을 아지트로 삼고 있다." 이 기사에 전적을 의존하자면, 그들은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둡고 좋은 오락실에나 갇혀 있다.


어느 책 기사를 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게 없으니 힘도 안 나고 속된 말로 '찌질이'가 되어 있다." "아빠. 난 찌질이 바보 멍청인가봐요." 찌질이라는 말은 자기비하 심리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인터넷 소설에는 찌질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있는데 그들 모두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말 한 번 못하거나 연애에 서툴다. 이 또한 자기 비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연민적인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물론 찌질이는 놀이문화에도 등장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소룡 놀이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조삼모사', '드라군 놀이', '댓글 등수 놀이'가 대표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싱하형이나, 개죽이 같은 캐릭터도 생겨났다. 그야말로 유치하지만 원초적인 재미를 주는 아이들의 놀이다.


이제 찌질이는 방송 오락프로그램에도 진출했다(?). MBC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을 보면 하나같이 찌질하다. 매주 도전 주제라는 것도 거창하지 않고 찌질해 보이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왜 시청률이 나오는지 불가해의 대상이 된다. 이 프로를 보며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찌질한 이들이 혼자 놀면 불쌍해 보이지만 모이면 즐거움을 준다. 이들이 촌스러운 사람을 희화화하고 찌질한 것으로 만들 때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 그들은 착해야 한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위대한 캣츠비> 담당 PD는 MC몽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가 찌질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발상적으로 캐스팅을 했다. 찌질이, 못난이, C급 느낌, 백수이면서 순수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의 MC몽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말에는 찌질이에 대한 대중문화적 심리를 함축하고 있다. 찌질이는 못나고 B급도 아닌 C급이지만 마음은 순수하고 여성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이 때문에 "마음껏 혼내세요. 역시 찌질이 못난이 엠씨몽입니다"라는 말에 혼낼 사람은 많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최근에 인터넷 찌질이는 반드시 그러한 순수와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것과 멀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상식 밖의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을 '인터넷 찌질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한국 개신교들의 선교행태를 비판한다면서 코란을 불태우는 신자들의 모습이나 아랍지역에서 선교하는 기독교인들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이슬람인들을 오히려 자극하는 이들을 말한다. 인터넷상의 찌질이 행태는 이제 개인이나 순수한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조직적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집단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인터넷 찌질이는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반복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해내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익명의 사람이나 상대방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는 막가파의 성향도 보인다. 이 때문에 찌질리즘이라는 말이 등장했는지 모른다. 변변치 못하고 못난 모습 등을 일부러 추구하는 행위 일체를 말한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찌질리즘을 추구하는 이들을 찌질러로 통칭하기도 한다. 사실관계나 이유 여하와 상관없이 도가 지나친 악성 댓글을 남기는 이들이다. 이러한 찌질러의 특징은 개념이 없고, 반말과 욕설에 능하다. 마치 불의의 세력과 싸우는 기사 혹은 전사인 것처럼 전투적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이들을 '스파이더맨'이라고 부른다. 닥치는 대로 거미줄을 치고 다닌다. 즉 자신을 위해 닿는 곳 어디나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스파이더맨이라기보다는 영화 <프릭스>에 나오는 거미가 아닐까 싶다. 찌질러는 바이러스와 같다는 말도 있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도 같이 휘말리다 보면 찌질러로 만든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찌질이라는 단어는 나름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그 의미가 바뀌거나 강화되고 심지어 왜곡된다.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좌파 찌질이', '노빠 찌질이', '통합신당 찌질이', '개혁 찌질이', '수구 찌질이', '386 찌질이' 등을 볼 때도 말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있다.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찌질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은 찌질한 요소들은 자기를 지키려는 심리의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찌질이'를 코쿤족, 즉 자기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로 분류하는데 이는 정말 맑은 영혼을 가진 이들일 수도 있다. 드라마 <봄날>의 은섭(조인성) 캐릭터를 네티즌들이 찌질하기보다는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평가를 한 이유다.


우리는 모두 찌질이가 되기 싫어한다. 상대방을 찌질이로 만들면서 자신이 찌질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끊임없는 악순환을 불러오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2007.09.17 17:10ⓒ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 보낸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찌질이 #찌질러 #찌질리즘 #댓글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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