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유적지 전경
이승철
이런 광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주변에는 다행히 우리 일행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우울했던 우리들의 여행길은 다시 즐거움과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들은 언덕을 올라가 쿰란유적지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우선 유물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유물전시관 안에는 목욕실과 작업실 등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과, 양가죽에 쓴 문서, 토기물병과 몇 가지 생활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경건 제일주의로 살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정결의식을 매우 중요시했던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에서 벗어나, 이곳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메마른 광야의 바위 산자락 쿰란에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빛의 아들들임을 자처했다.
그들의 삶은 철저한 경건의식과 노동, 그리고 묵상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목표는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도를 하고, 하루의 노동과 식사와 교제를 통해 신을 묵상하고, 성경을 쓰기 전에는 항상 목욕을 하여 몸을 경건하게 했으며, 깨끗하게 세탁한 새 옷을 갈아입고 새 물감과 새 붓으로 성경을 썼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이들의 공동체는 서기 68년 로마군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로마군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때 그들은 필생의 목표로 양가죽두루마리에 써 놓은 성경 필사본들을 토기 항아리에 담아 바위산 속의 동굴 안에 깊이 숨겼다.
그렇게 숨겨 놓았던 양가죽 두루마리 고문서들이 발견된 것은 1947년 봄이었다. 이 지역에서 양을 치던 베두인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기 위하여 입구가 반 쯤 허물어진 동굴 속에 돌을 던졌는데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