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기가 '세수'라면, 발 씻기는?

[우리 말에 마음쓰기 88] ‘씻고 빨기’를 잃은 우리들

등록 2007.09.14 12:10수정 2007.09.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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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은 발씻김 예식을 더욱 뜻있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본받아 … 시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세족례식을 듣고, 그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의 흑인 여종 마르타 모트인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했던 것입니다 ..  <인천주보> 1931호(2007.6.10.) 2쪽

 

아침에 빨래를 하고 저녁에도 빨래를 합니다. 조금씩, 아니 한두 가지씩 빨래를 합니다. 어제는 어느 분이 '세탁기 하나 얻을 일이 있는데 쓰시겠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세탁기 없이도 되는걸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손빨래로도 넉넉하니까요.

 

 ┌ 세족(洗足) : 발을 씻음
 ├ 세족례(洗足禮) : 성목요일 저녁 미사 때에, 열두 제자의 발을 씻긴 예수를
 │    본받아 거행하는 예절. 12명의 어른이나 어린이를 뽑아 그들의 오른발을
 │    씻긴 뒤 닦아 준다
 │
 └ 발씻김 + (예식 / 마당 / 자리 / 잔치 / 모임)

 

그러고 보니, "빨래를 해 주는 기계"인데 '빨래기계'나 '빨래틀'이라든지 '빨래통'이 아니라 '세탁기'라는 말을 쓰는 우리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빨래방'이라는 말보다 '세탁소'라는 말을 훨씬 먼저 썼잖아요. 게다가 '드라이크리닝센타' 같은 서양말까지 들어와서 뒤죽박죽 쓰였습니다.

 

손을 씻으면 '세수(洗手)'요, 얼굴을 씻으면 '세면(洗面)'이라고 합니다. 발을 씻으면 '세족'이 되나요? 손을 씻으면 말 그대로 '손씻기'요, 얼굴을 씻으면 그 모습 그대로 '얼굴씻기'요, 발을 씻으면 그 몸짓 그대로 '발씻기'일 텐데요.

 

빨래를 하고 그릇을 부시고 몸을 씻는 삶이 우리 말 문화에 고스란히 담기지 못한 탓에 '세탁'부터 해서 '세면-세수'에다가 '세족'까지, 아쉬운 말씀씀이가 이어가는구나 싶습니다. 이제는 해묵은 말버릇은 털어낼 만도 한데, 앞으로도 퍽 오랫동안 케케묵은 말투가 이어갈는지요.

2007.09.14 12:10ⓒ 2007 OhmyNews
#우리말 #우리 말 #세족 #발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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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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