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법경유착의 사법살인' 방조할 건가?

[기고]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록 2007.09.12 22:22수정 2007.09.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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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시원한 가을로 접어드는데 참 답답하고 우울하다. 아니 짜증이 나고 몹시 화가 난다.

 

우리나라의 2위 재벌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고법으로부터 그의 경제특가법상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서도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음으로 우리나라 재벌의 치외법권적 지위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최근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에게 국가 배상이 확정되면서 ‘사법살인’이란 말이 우리 곁에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나는 이번 정몽구 재판을 보면서 또다른 간접 사법살인이 자행되고 있음을 본다.

 

오늘도 매일 35명 이상이나 실업이나 생활고 등으로 등떠밀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을 강요 당하는 사회의 책임이, 양극화를 통해 절대 빈곤을 양산하는 제왕적 오너 중심의 잘못된 재벌 경제체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 그룹 현대의 과거와 현재를 싸잡아 평가하고 공과를 따질 능력도 의지도 나에게는 없다. 다만 현실의 현대와 정씨 일가의 비리와 범법으로 얼룩진 제왕적 경영 형태에 대해서는 똑바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 등 이해 당사자를 비롯 우리 사회가 같이 노력해서 제대로 가도록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명백히 반사회적이며 법의 정신을 훼손한 오판이다.

 

재벌 총수들 '집행유예'-삼성 고발한 김성환 위원장 '옥살이'

 

우리나라는 정의와 질서의 마지막 보루를 법으로 정하고 그 적용의 판단을 사법부에 맡기고 있다. 그러기에 법원과 판사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 법원은 유독 재벌에 약하다.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들 돈 앞에서 당당할까만 법원마저 그 모양이니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 기댈 데가 없다.

 

우리나라 재벌 1위 삼성의 총수 이건희는 여러 탈법, 범법 혐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정은커녕 국회의 증인석에도 못 세우고 있고, 두산 재벌의 비리와 탈법이 오너 형제들의 지저분한 싸움으로 드러났음에도 오히려 법원은 솜방망이로 때리는 척하더니 대통령은 한 술 더해 금방 사면 복권시켜버렸다.

 

한화 재벌의 김승연 총수의 상식을 초월한 특권의식의 범법 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처벌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새로 만들어진 비정규 법안을 시행도 되기 전에 악용해 수많은 노동자를 실직의 거리로 내몰아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랜드라는 기업도 재벌급이어선 지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노조원들만 구속시키고 있다.

 

만약 이런 재벌 총수의 구체적 범법 행위가 미국 법정이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모두 종신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정경유착과 언경유착에 한 술 더 떠 법경유착이 찰떡이니 돈에 밀린 서민들은 언제나 무전유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행태가 이런데, 법 적용에 있어 중요한 형평의 원칙을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삼성의 유령노조와 싸우며 삼성 재벌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했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성환씨는 오히려 이건희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3년 실형 선고를 받고 영등포교도소에서 이 순간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하고 앞장섰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시민사회민중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를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을 기각함으로 70 노인을 긴급 구속케 하고, 구속 한 달이 넘어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보석 신청마저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 사법부가 아닌가?

 

부도덕한 총수 중심 재벌체제 온존하는 한 경제민주화는 요원

 

이 가을 내가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이런 사법부의 반역사적 반사회적 반민중적 행태에 대한 시민사회 민중운동 진영의 대응이다.

 

이 판결이 있자마자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아주 현명한 판단이라며 여론을 호도하며 설레발을 치는 사이, <한겨레>를 비롯한 대항 언론들은 일회성 사실보도나 유감이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소극적 대응을 함으로 재벌과의 유착에서 비롯된 재벌과 사법부의 범법행위의 본질을 폭로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시민사회 민중운동 조직들도 침묵하거나 일회성 성명 발표 정도의 입장 표명에 그침으로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으며, 특히 직접 당사자인 현대 노조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대응이 미흡함으로 국민들의 분노는 조직될 수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대통령 후보 선출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당원들을 조직하고 후보들을 앞세워 법원이나 재벌 본부를 항의 방문하고 집회라도 해서 억울하고 답답해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야 할 게 아닌가? 민주노총 위원장의 현장대장정은 이런 곳으로 바로 이어져야 원래의 취지가 살아날 것이 아닌가?

 

이제 누구도 ‘법과 원칙’ 따위의 공연불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도 얘기해선 안 된다. 부도덕한 총수 중심의 재벌 경제체제가 온존하는 한 경제 민주화는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한 시장질서나 건실한 중소기업의 육성 따위의 말은 낮잠 자다 아무 보고나 짖어대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제벌체제와 재벌총수의 역할이 우리 경제의 요체로 생각하고 우리 경제가 무너질까 두려워 법과 원칙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정도의 사고밖에 못하는 최고 엘리트를 자처하는 이 나라 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는 이직도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선언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현대재벌의 정몽구와 한화재벌의 김승연 재판의 결과와 그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주소임을 확인해야 하는 아픔이 이 가을의 초입에서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이제 눈앞에 다가온 대선과 총선에서 새판을 짜지 않으면 이런 질곡이 더 심화되리라는 절망감이 심장을 압박해 온다.

 

진보 진영의 단결과 성찰, 새로운 전진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수호 기자는 전 민주노총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새진보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7.09.12 22:22ⓒ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수호 기자는 전 민주노총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새진보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수호 #재벌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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