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들어가기들어오는 대로 쌓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책을 갈무리할 수 있다면, 또는 할아버지 딸아들이나 다른 분들이 헌책방 일손을 배우면서 이곳을 알뜰하게 꾸려 보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최종규
<2> 사람과 책 책꽂이를 새로 닦고 뒤쪽에 작은못을 박고 자리를 잡아 놓습니다. 책도 그럭저럭 꽂아 놓습니다. 그러고는 낮마실을 나옵니다. <삼성서림> 할아버지는 허리를 숙이며 꾸벅 절을 하시네요. 아이고야, 저는 할아버지보다 조금 더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절을 합니다. 예전,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삼성서림>을 찾아올 때부터 느꼈지만, <삼성> 아저씨가 책손한테 꾸벅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얌전해 보이고 다소곳해 보입니다(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듯하게 틀이 잡혀 있어요. 당신이 어릴 적에 인사를 잘 배우셨다는 느낌입니다. 문득, <삼성> 할아버지 절하기가 책 만 권보다 낫구나 싶은 느낌.
"거기, 홍사○이라고 알아요?" "네? 잘 모르겠는데요." ""거, 왜, 있잖아. 여기 자주 오는 양반." "음, 모자 쓰고 안경 쓰신 분이던가요?" "그래, 맞아. 키 크고 마른 양반. … 그 양반이 그러는데, 자네 교육자 집안이라면서?"
음, 그 할아버지 이름이 '홍사○'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그 할아버지를 처음 뵌 때가 1992년일 텐데, 그때부터 여태까지 이름 석 자도 모르고 얼굴만 알고 지냈습니다. 1992년 그때에도 할아버지, 지금도 할아버지. 생각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 얼굴은 하나도 안 바뀌었군요.
혼자 살면서 김치를 조금씩 혼자 담가서 한두 가지 반찬만으로 밥을 해서 드신다고 들었는데. 작은 방 한 칸에서 조용히 사신다고. "지금 아흔이 넘었지, 아마?" 홍 할아버지를 뵌 지 열여섯 해가 되었는데, 처음 뵐 때 벌써 일흔이 넘으셨군요. 할아버지는 늘 그 모습 그대로이고, 저는 젊은 나이인 터라 얼굴이나 몸이나 늘 달라지고 있고.
<삼성> 할아버지를 처음 뵌 1992년에도 그분은 할아버지로 보였고(그때에도 할아버지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시렁을 뒤적이며 책을 살피는 저를 미쁘게 보며 "책만 구경하지 말고 술도 한 잔 해?"하시던 매무새는 여태껏 그대로입니다. 그때에는 "저 학생(고등학생)이잖아요. 교복도 입었는데" 했고, <삼성> 할아버지는 "그런가? 그래도 옛날에는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다 마셨는데"하면서 잔을 내미셨고, "나중에 학교 마치면 마실게요"하면서 사양을 했습니다.
그 뒤, 학교를 마친 뒤 <삼성>을 찾아갔을 때 다시 "책만 보지 말고 술도 마시면서 봐"하는 말씀을 또 들었고, 책을 구경하며 거푸 여러 잔을 마시며 눈이 핑핑 돌았지만, 속으로 웃으면서 즐겁게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떨까요?
책방 문간에서 <삼성>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서로 꾸벅 절을 했습니다. 손에 든 사진잔치 안내 엽서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책 구경할게요"하고 말씀드리며 책을 둘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