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집유... 애국심 뛰어난 판사님?

[주장]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

등록 2007.09.07 11:13수정 2007.09.0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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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늘 재벌에게는 그런 판결을 해 왔었으니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미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우리 사법부의 양형을 재는 저울이 되어 버렸다.

 

재벌들이 범법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은 일은 없다. 이제 누구도 법대로 처결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돈없는 서민이나 소규모 회사들의 범죄에는 추상같은 단죄가 내려질 것이다. 국민은 다 안다.

 

1. 사법부의 역할과 양형.

 

사법부는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법질서를 해치는 사람에게 법과 양심에 따라서 유무죄를 가리고 형량을 정한다. 사법부가 무너지면 그 사회의 법질서는 지켜질 수가 없다. 우리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사법부는 철저히 범법행위자를 응징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또 판사는 증거에 의하여 유무죄를 판단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형량을 정해야한다. 법이라는 것은 이미 명문화된 것이어서 판사에게 특별히 많은 재량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법률이 불분명하게 된 일도 없지는 않으나 비교적 재량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런데 범법행위의 질이 비슷한 경우에도 양형이 현격히 다른 경우가 있다. 그것은 법률이 부여한 재량과 판사의 양심이 결합하여 생기는 일이다. 법률은 그대로지만 판사의 양심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죄질이 유사하다고 해서 항상 판결이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법률과 양심중 양심이 균형추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부판사들의 양심속에는 이미 재산유무가 중요한 저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률은 분명하지만 양심속에는 기울어진 저울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양형은 법률과 양심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 아니라 법률과 기울지 않은 바른 양심에 의해 결정되어야한다. 기울어진 양심은 이미 양심이 아니고 불량심이다. 기울어진 저울로 사물의 질량을 측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양형하는 판사의 양심도 그냥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바르고 균형잡힌 양심이어야 한다.

 

2. 국가경제를 걱정하는 판사님의 눈물겨운 애국심.

 

이번에 정몽구 회장에게도 변함없이 관대한 처벌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바로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작용하였다. 우리가 재벌총수들의 판결을 대할 때마다 늘 보던 바로 그 논리이다. '피고인이 그동안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며, 중형을 받을 경우 회사의 경영상 피해가 예상되고, 따라서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류의 정상참작 이유이다. 바로 유전무죄의 전형이다.

 

서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게에서 빵 하나를 훔쳐도 엄중한 판결을 받는다. 몰론 자신의 어려움을 핑계로 범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법이라는 것이 철저히 준수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곧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벌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돈이 없기 때문에 정상참작의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은 좀 균형을 상실한 것이다. 무전유죄이다.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도 전형적인 유전무죄의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하여 많은 고뇌를 했다고 한다. 판사가 법률과 바른 양심에 따라 바른 판결을 하기에도 벅찬 일인데 국가경제까지 그렇게 심오하게 걱정하였다니 감동적이다. 판사가 그렇게 높은 애국심을 가졌다니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라경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집행유예에다가, 준법경영에 대한 강연을 명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거액의 범죄에 대하여 집행을 유예한 것은 늘상 보는 일이라서 감동이 없다. 그런데 범법자에게 준법경영에 대하여 강연을 하라는 것은 매우 색다른 발상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준법경영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할 대상인데 강의를 하도록 명하였으니 참 창의적인 판결이다.

 

판사는 법률과 사법적 판단에만 능통한줄 알았다. 그런데 국가경제를 위해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색다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만들어 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언제 경영과 경제에 그렇게 능통하고 창의성까지 갖춘 것일까?

 

정몽구 회장이 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를 하는 평소의 경영스타일까지 고려를 하였단다. 우리의 사법부가 피고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꼼꼼히 연구해서 양형에 참고할줄은 정말 몰랐다. 거대한 재벌그룹의 경영방식까지 통달을 하였으니 엄청나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판사임에 틀림이 없다.

 

판사님의 노력과 애국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그러나,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에 대해서는 좀 공부를 많이 해야할 것같다. 국가경제나 경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소유와 경영 그리고 경제범죄와 국가경제.

 

현대자동차 그룹은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판사의 염려대로 현대자동차가 잘못되면 국가경제가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문제는 기업과 총수가 하나의 운명이냐 아니면 각기 다른 실체를 가진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인 통설은 각기 다른 실체라는 것이다.

 

총수가 유고시 회사가 잘 운영될 수 없다면 그 회사의 지배구조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기업은 총수의 수명과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는 실체(Going concern)이다. 총수가 물리적 수명이 다해도 영속하는 것을 지향한다. 총수와 운명을 함께하는 기업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사적 재산일 뿐 기업이라 하기에 민망한 일이다. 따라서 총수가 중형을 받고 투옥이 되더라도 회사는 돌아가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회사는 장차 국가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또 적절히 권한을 위임해서 경영하지 않고 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특성은 비판받아야할 일이다. 그것이 관대한 처벌을 해야할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런 류의 관대함은 결국 기업을 총수의 사유물로 만들고 그렇게 경영하는 것에 대한 유인을 제공할 뿐이다. 앞으로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권한을 스스로 쥐고 진두지휘하려 할 것이다. 잘못된 경영방식에 대하여 사법부가 동기를 부여하는 판결을 하였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에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일이다.

 

기업이 잘되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고용을 늘리며 국가의 세수에 기여를 하면 분명히 국가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그것을 누구도 방해하여서는 안된다. 기업이 망하거나 축소되면 국가경제에 직접적인 피해가 된다. 그런 일을 누구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업을 경영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것으로 정당하지 않은 일을 한다면 국가경제를 망가뜨리는 일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불법경영 행태와 경제적 범죄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야하고 금지되어있는 것이다. 법이 지향하는 것은 투명하고 옳바른 경영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범죄에 대하여 당장의 경제에 미치는 파급을 운운하며 관대한 처벌을 하는 것은 안된다. 그러한 잘못을 징치하고자 하는 법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기적으로 그러한 불법을 조장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불법이 만연하게 되면 국가경제는 장기적으로 대혼란에 빠질 뿐이다.

 

결론으로 판사는 오직 법률과 바른 양심에 의하여 판결해야한다. 판사가 재정경제부 장관도 아니고, 산업자원부 장관도 아니다. 판사는 판사일 뿐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기업경영과 국가경제를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잘 모르고 너무 걱정을 하면 결과적으로 국가경제를 좀먹는 일을 하게된다. 모르는 일에는 나서지 말아야한다. 잘아는 법률과 양형기준에만 집중해서 노력할 일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악하고 기울어진 잣대이다. 사법부의 대오각성을 바란다. 이러한 판결은 앞으로도 수 많은 재벌총수들의 유사범죄를 부추기는 도구로 작동할 것이다. 그래서 국가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다. 모든 것은 사법부의 기울어진 잣대에서 기인한다. 제발 사법부가 제정신을 회복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 인터넷 시민광장에 함께 올립니다.

2007.09.07 11:13ⓒ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 인터넷 시민광장에 함께 올립니다.
#정몽구 #유전무죄 무전유죄 #재벌에 관대한 사법부 #기울어진 양형잣대 #경제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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