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해본 집들이

집에서 음식장만하기를 잘했어요

등록 2007.09.06 10:06수정 2007.09.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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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를 마지막으로 이번 집들이가 끝이 났다. 10년만에 다시 해 보는 집들이였다. 이사는 했지만 가족끼리 밥이나 먹고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언제 초대할 거냐고 자꾸만 재촉을 해서 지난주 친구들을 초대했다.

 

친구들은  나가서 먹자면서 나한테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그래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사하고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는 건데. 나가서 먹기엔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시장을 봐서 음식장만을 시작했다.

 

다행히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넉넉히 음식을 만들어 놔서 몇 가지만 더 장만해도 괜찮을 듯했다. 갈비와 잡채, 생선전, 낙지볶음 등 성의껏 준비를 했다. 6명의 친구들이 도착을 했다. 그들이 준비해온 가루비누, 화장지 등 선물들을 주면서 “부자되세요”하며 내게 건네준다. 이사했다고 그런 것들을 받아본 지 꼭 10년만이다. 새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집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 좋다. 앞뒤가 탁 틔어서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런데 자기가 시흥시 떠나고 나니깐 괜스레 배신감이 느껴지더라. 어쩜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이사를 했니?” “늘 이웃에서 살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떠나고 나니깐 어찌나 허전 하던지” “그래 미안하다. 그래도 시흥시하고 그리 멀지 않잖아. 차가 막히는 곳이 아니라 15분~20분이면 갈 수 있어. 나도 갑자기 이사하느라 미리 얘기를 못 했어”  그러면서 자기들도 이사하고 싶다고 한다.

 

그들이 집 구경을 하는 사이 난 상을 차렸다. 옆에서 내내 말이 없던 한 친구가 주방으로 들어서면서 “낯선 곳에 이사 와서 자기는 하루종일 뭐하고 지내니? 나이 먹으면 이사하기 쉬운 일이 아닌데?” “뭐  그다지 낯설다거나 어색하지 않아. 살 만한데. 여기나 거기나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뭐” 그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 친구가 도와주어서 상이 빨리 차려졌다. 차려진 상을 보더니 친구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힘들게 왜 이렇게 많이 차렸어. 육해공군이 다 있네. 나가서 먹고 집에 와서 차나 한잔 하자고 했더니” “자기 이사 오더니 많이 변했다” 한다. 난 “변하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란다.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많이들 먹어라” 그들은 고맙게도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다 먹은 후에는 나는 음식 준비하느라고 고생했으니 설거지들을 서로 한다고 난리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한테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차 한 잔씩 마시면서 누워서, 편하게 다리 뻗고 앉아서 한바탕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그런 편안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번거로웠지만 집에서 음식장만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들이 일어섰다. 난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앞마당을 걸으면서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라 깨끗하고 좋다. 여러 가지 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그럼  다음 달에는 시흥시에서 만나자” 하면서 그들이 차에 올랐다. 손을 흔들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앞으로 내게  집들이 할 기회가 또 다시 생길까? 그러나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이란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곳이 내가 끝까지 살아야 할 종착역일 줄 알았지만 이런 새로운 변화가 찾아 온 것이다. 능력이 된다면 한 번 더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2007.09.06 10:06ⓒ 2007 OhmyNews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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