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 캠프의 핵심 참모인 백용호 전 원장이 제출한 보고서.
김병기
운하라는 새로운 물류운송 수단을 건설하려면 도로·철도·항만 등 기존의 운송 수단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합니다. 향후 증가할 물동량이 얼마인지, 기존 시설로 수용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 뒤에 불가피할 경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겠지요.
이 후보님은 도로교통에 비해 "운하가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하보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발생하는 운송수단은 철도입니다. 이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이 완료되는 시점인 2010년에는 대전 대구도심구간과 대구 부산구간에도 고속철도 신설이 건설됨에 따라 기존선의 용량에 여유가 생기게 되며 이를 화물운송에 활용한다면 화물운송에 있어 철도의 역할을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고속철도의 완전개통이 이루어지면 서울 부산 전 구간에 복선의 고속철도 신선이 건설되며 고속철도 운행시간도 현재의 2시간40분에서 1시간56분으로 감소하게 되어 기존여객열차 승객 중 많은 수가 고속철도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존여객열차의 운행횟수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됨. 이로 인하여 화물열차운행을 위한 여유 용량이 대폭 증대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바 철도 화물운송량의 증대 및 서비스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됨."(보고서 42p) 현재의 철도 산업은 여객 중심인데,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기존 철도는 화물운송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경부운하를 건설하지 않아도 기존 시설인 철도가 경부축의 물류를 흡수할 여력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분이, 더군다나 물류혁명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공약으로 발표한 당신이, 이처럼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상황이 이러한데 당내 의원들을 상대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경부운하를 건설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의원들을 설득하기에 앞서 백 전 원장에게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속철도 완전개통 계획에 차질이 생겼는지 말입니다.
물류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보고받으셨잖아요당신은 당초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수도권-부산간 이동 물동량의 80%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화주들이 2~3일 걸리는 느린 운송 수단을 택할 리 만무하지만, 백보양보하겠습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현재 수도권-부산간에 이동하는 물동량이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등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합니다. 이 보고서는 서울과 부산간의 물동량에 대해 국한되어 있지만 향후 물류이동의 성격 등에 있어서 참고가 될만하다고 판단해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서울과 전국 지역간의 유출입 물동량을 살펴본 결과 서울은 경기·인천·충남·충북 지역간의 유출입 물동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 물류의 이동은 주로 수도권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유출되거나 유입되는 물동량의 절반 가량(각각 45.4%, 43.0%)이 근교라고 할 수 있는 경기지역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도 서울↔경기, 서울↔인천간의 물동량 증가가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물류이동이 서울↔부산 등 긴 호흡이 아니라 수도권·부산권 등 지역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장거리를 이동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교통개발원(2002년)의 통계 수치가 나와있는 데, 현재 서울-부산간의 유출입 물동량은 전체 물동량의 3.2%(서울에서 부산으로 유출), 1.8%(부산에서 서울로 유입)에 불과했습니다.
당신이 얘기하듯 수도권-부산 물동량의 80%라는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운반될 총 물동량의 크기가 더 중요합니다. 서울-부산간 물동량의 절대량이 이처럼 극히 적은 상황에서 경부운하가 수도권-부산 물동량의 80%를 흡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물류 환경의 변화, 30년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