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크런의 한 성당 안, 제대(祭臺) 옆벽에 이라크 참전중인 미군 병사들의 안전한 귀향을 기원하는 기도문이 적혀있습니다. 이라크인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기도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데니스 하트
맹목적 애국주의에 휘둘리며 돈벌이로 내달리는 노동계급오래전에 유행했던 '아는 게 별로 없어요(Don't know much)'라는 노래는 어떤 청년이 한 아가씨에게 구애를 하면서 "나는 역사도, 생물학도, 과학도, 불어도, 지리도, 삼각함수도, 대수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알아요"라는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옛날에 영어를 가르칠 때 이 노래를 설명해주었더니 한국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 "어떤 여자가 그런 바보 천치를 좋아하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계층을 불문하고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지만, 미국의 노동계급은 두뇌를 쓰는 것보다 육체를 쓰는 것이 더 떳떳하다고 여기며 직업을 교육보다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학교육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얻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제게 동양학 강의를 수강한 현직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이 교사를 존경하기는커녕 은근히 무시하고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학사 학위를 갖고도 우리는 당신보다 월급을 두 배는 많이 받으니 오죽 무능하면 교사 노릇을 하고 있겠느냐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 중에 "유능한 자들은 일선에서 일하고, 무능한 자들은 교사가 된다(Those who can, do; those who can't, teach)"는 속담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교육을 얼마나 천시하는지가 잘 드러나는 속담이지요.
대학교수라고 해서 대접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흔히 듣는 이야기가 "상아탑에 갇혀 사는 교수들이 현실 세계를 어떻게 알겠어요?"라든지 "장차 직장생활에 도움도 안 될 역사나 수학이나 생물학 같은 걸 왜 수강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것입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15년에 쓴 저서에서 이미 미국 문화의 천박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만인이(물론 여기서 만인이란 백인 남자를 말합니다) 동등하다고 믿으며 결국 사회적으로 출세할 확률도 거의 비슷하다고 믿습니다. 출신 성분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동등한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풍요가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되고 눈에 띄게 남보다 잘나 보이려면 죽도록 돈을 벌어서 미친 듯이 물질적인 부를 쌓아올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출세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미국 지폐를 보십시오. 지폐에 그려진 인물 중에 철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정치가들과 부자들만이 모델로 등장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철학자를 세 사람만 꼽아 보십시오. 하나도 없을 겁니다.
교육과 배움을 경시하는 풍토에서 살아온 많은 미국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점을 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으면 됐지 학교에서 우등생인 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모교인 예일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평균 학점이 C였어도 나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벌렸고 청중은 이에 크게 환호했습니다.
물론 모든 미국인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힘의 논리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며, 가장 맹목적인 애국주의자들인 노동계급의 시민들은 상당수가 그런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도 매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학사 학위가 있으면 나중에 취직해서 일 년에 만 불을 더 벌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꼭 격려합니다.
계급 재생산 도구로서 교육미국인의 집단적 태도는 교육체제의 구성에서 드러납니다. 미국 교육체제는 모든 시민을 부자와 빈자라는 두 계층으로 갈라놓습니다. 부잣집 자녀들은 시설 좋고 자원이 풍족하고 깨끗한 학교를 다니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습니다. 반면 대도시와 저소득층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들은 시설과 비품이 모자라고, 교사들이 부족하며, 건물 자체도 위험할 정도로 낡아있는 곳이 많습니다. 가난한 학교에서는 학업 성취도 역시 일반적으로 낮습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에 해당하는 공립학교의 숫자가 월등히 많습니다.
세계 41개국 고등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고등학교 3학년의 수학 과목 성취도가 꼴찌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을 미국에서는 대학 신입생들이 배우고 있었고 그나마 많은 학생들이 따라가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수학성적이 하도 낮아서 많은 대학교에서 대학교 교양 수학 과목을 수강하기 전에 '보충 수학'이라는 과목을 거치도록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학교만 해도 "저는 수학 체질이 아니에요"라든가 "수학이 싫어 죽겠어요"라고 하는 대학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수학, 외국어, 과학 강의는 많은 대학생들이 특히 기피하고 혐오하는 강의라고 합니다.
시각을 조금 바꾸어 제국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봅시다. 제국의 지배계급이라고 해서 기본 수학능력도 없고 역사도, 지리도, 과학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하고 무능한 국민을 특별히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능하고도 충성스런 시민들이 제국에 가득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하자니 교육에 엄청난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하고 시민들의 합의를 끌어내기도 아주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무지하더라도 현 상태의 계급질서에 만족하면서 맹목적으로 애국적인 국민들을 키우는 것이 더 편리하고 손쉬운 일입니다.
결국 제국의 교육체제는, 제국 내의 민중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면서 제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마음에 새기게 하여 충성스런 제국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