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끝난뒤 이명박 후보 지지 대학생들이 '취직 좀 시켜주면 안되겠니'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명박'을 연호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근 내가 겪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30대 회사 동료들과 대학가 신촌 인근 술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 영화 <화려한 휴가>가 화젯거리로 올랐는데, 옆자리 20대 남녀가 "어, 저희도 오늘 그 영화 봤는데요" 그러면서 합석을 제안했다. 좋다고 하고 술상을 맞붙였다.
그 둘은 인근 대학을 다니는 20대 남녀였다. 여학생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재외국민 특별전형 케이스로 들어온 학부생이었고, 남학생은 군대에 다녀온 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둘은 기초과학 분야의 전공자들이었는데, 남학생은 치의대, 여학생은 의대 편입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돌연 술자리는 여학생의 하소연으로 뒤덮였다. 평소 남자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불만과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자연스럽게 '청중'이 되었다. "내가 왜 니 용돈까지 대야 하냐!"며 여학생은 눈물에, 잘하면 콧물까지 흘릴 판이었다.
사연을 정리하면, 여학생의 어머니는 동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렵게 번 돈으로 딸자식을 일찌감치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나 보다. 남학생의 아버지는 모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이들은 부모에게 등록금은 물론 용돈을 타 쓰는 처지. 남학생은 집에 손을 잘 벌리지 못했던가 보다. 상대적으로 여학생쪽에서 데이트 비용을 자주 댔고, 학원비를 대준 적도 있단다. 그 여학생은 "왜 우리 엄마가…"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눈물을 쏟았다. 엄마가 간혹 자신 몰래 남자친구에게 용돈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눈치다. 여학생은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설움과 억울함을 토했다. 남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20대 청춘남녀의 연애 풍경이다.
"5%를 제외한 나머지는 평생 88만원을 받으면서..." 며칠 뒤 우석훈 박사(40·생태경제학)를 만났다. 그는 군대를 건너뛴 덕에 서른이 되기 전에 박사학위를 딴 행운아다. 대학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다녀와 대학 강사를 비롯해 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최근 3년 녹색당을 만들기 위해 눈물나는 시도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떠나 있다"며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 부른다.
우 박사를 만난 이유는 최근 그가 펴낸 책 때문이기도 했다. <88만원 세대>. 과격한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일종의 20대에 관한 경제 보고서다.
88만원은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 74%를 곱하면 나오는 금액(그나마도 '세전' 소득이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만이 삼성전자·5급 사무관·한국전력 등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생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대를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한 대선 후보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을 하고 싶다"는 대학생의 말을 출사표에 삽입해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실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석훈은 '20대'에 착목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