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주변 맴도는 경계인, <개늑시>

[드라마 비교] <개와 늑대의 시간>과 <마왕>

등록 2007.09.03 14:23수정 2007.09.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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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종족은 누구나 완벽하게 선할 수 없고, 누구도 완벽하게 악할 수 없다. 원래 선, 악의 100%순도를 인간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참 뻔뻔하게 정제된 선과 악을 잘도 써먹는다.

어떻게 저렇게 착한 것인지, 어떻게 저렇게 악한 것인지…. 어릴 때 즐겨 읽은 '흥부와 놀부'의 캐릭터들처럼, 말도 안 되는 캐릭터들이 드라마에는 많이 나온다. 참 재미없는 캐릭터들이다.

요즘 <개와 늑대의 시간>(이하 개늑시)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신선하고 새로운 내용은 그닥 없지만 진부한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진부한 고리들을 재미있게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수혁(이준기분)과 케이(이준기분)가 있다.

수현 vs. 승하

<개늑시>의 주인공 수현(이준기)은 한이 많은 인물이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어머니는 자신이 보는 눈 앞에서 살해당했다. 게다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아는데도 직업상 당장 그를 죽일 수도 없다. 또 알고보니 그 범인의 친 딸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다.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던 선한 수현은 도중에 사고로 기억을 잃는다.

케이는 태국에서 자라난 뒷골목 양아치다. 착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케이는 생존본능으로 아무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했다. 게다가 머리도 영리하고 약삭빠르고 적당하게 여자도 좋아한다. 수혁과 케이는 닮은 부분이 없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그들은 동전의 양면 같은 캐릭터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 결코 융화할 수 없는 두 존재는 수현이 기억을 잃고 기억을 되찾는 사이에 합쳐진다. 그리고 수현은 깨닫는다. 이제 다시는 옛날에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래서 드라마가 14회를 넘기면서 수현의 눈매는 날카롭게 변했고, 자신을 향한 지우의 사랑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


<마왕>의 오승하(주지훈 분)는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선함은 악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가 악을 저지르는 목적은 분명하다. 억울하게 죽어버린 형의 복수를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복수의 이용하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그래서 승하는 괴로워한다.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을 점점 어둠속으로 몰아넣는다. 승하가 나중에 자살을 결심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개늑시>의 수현과 <마왕>의 승하는 닮았다. 둘 다 선·악의 모호한 경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과 악을 넘나들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남들 보다 더욱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현재의 상태를 포기할 수 없다. 수현은 어머니,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고, 승하는 형의 복수를 해야한다. 자신들이 망가지더라도 이들은 소정의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손으로 이것을 끝내야만 한다.

<개늑시>의 악인 마오 vs. <마왕>의 오수

<개늑시>의 마오(최재성 분)는 표면적인 악인이다. 마약을 팔고 검은 뒷거래를 하고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마오는 뿌리부터 악한 인물이 아니다. 마오의 이러한 악행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밑바닥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오가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한편으론 마오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부하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알고 자신의 수하를 위험으로부터 끝까지 보호한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구한 케이에게 아들과 같은 정을 느끼는데 마오가 원래부터 정이 많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울러 자신의 친딸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다.

마오가 괜찮은 보스로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는 악인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수현이 그를 죽이려고 시도할 때마다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왕>의 오수(엄태웅 분)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다. 게다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어릴 적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오수는 속죄의 삶을 살기 위해 커서 경찰이 된다.

세상의 나쁜 놈들을 처벌하면서 자신의 죄를 갚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승하를 만난 오수, 자신의 죄와 정면으로 마주서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은 용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수는 자신이 이제는 착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오와 오수의 변명섞인 외침은 동일하다. "살고 싶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 사이에 악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의도한 적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적도 있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오는 청방의 두목이 되어 악인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오수는 경찰이 되어 범인을 잡는 사람이 되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앞만 보면 살아왔던 두 사람. 이 둘은 과연 철저한 악인일까?

<개늑시>의 한지훈 작가는 <필름 2.0>과의 인터뷰에서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 모호한, 어슴푸레한 그림들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 어느 정도 이러한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의 이러한 캐릭터들을 좋아한다.

선과 악이 분명한 캐릭터들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정이 안 간다. 그러나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은 경계인들은  어는 곳으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불안정하다. 안정되지 못하는 이들은 그래서 한층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인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인간들은 모두 선과 악 언저리를 맴도는 경계인들이다. 평범하다고 해서 특별하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사람을 착하다고 치켜 세우고 악한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욕하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과 악을 넘나드는 것을 아니깐….

<개늑시>와 <마왕> 두 드라마는 모두 선악의 경계인들이 안식과 평안을 찾아가는 행보를 그린다. 그것이 서로의 죽음이 되었든 해피엔딩이 되었든 상관없다. 어떻게 해서든  끝을 맺어야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잠시나마 편안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늑시>의 결말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기 티뷰기자단 응모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기 티뷰기자단 응모
#개와 늑대의 시간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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