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박철
한 미국인이 자기네 문화와 그 장래를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 "껌을 사서 씹는 것보다 책을 사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으면 미국은 결코 문명한 국가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책으로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껌으로 인생을 생각한다"고 했다. 지나친 낙천주의가 인생을 부피의 세계에 머물러 있게 할 뿐, 깊이 있는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염려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보고, 우리 문화 현상을 보고 그것들이 대체로 너무 감각적이요, 피상적이요, 즉흥적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안고 고민한다거나 투쟁한다거나 안타까워하는 일이 너무도 빈곤하지 않나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젊은이들의 진학 경향이 주로 간판 따기, 출세하기, 그리고 안이한 성공이나 소시민적인 행복을 얻으려는 요령 찾기 따위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실력을 기른다, 품성을 도야한다, 인격을 함양한다 하는 면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만이 나타나지 않는가 싶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아도 신앙 문제니 인생 문제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대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의식이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 인생은 늘 술에 술 탄 맛, 물에 물 탄 맛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문제 해결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알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깊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급하게 익어버린 과실은 제대로 맛이 들지 않는 법이다.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내용이 충실한 인생의 열매가 익을 수 있고 알찬 문화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착잡하고 혼란한 세계를 해치고 그 밑에 흐르는 영원한 '참'에 접하려는 탐구요 창의요 수도적 노력이다. 사색이 빈곤한 사람에겐 화제가 없다. 저급한 농담이나 고집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값진 인생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자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그렇게 무덥던 폭염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시나브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 좋은 계절에 깊은 사색으로 자신의 삶을 더욱 그윽하게 가꾸어야 하겠다. 화단에 심은 소국(小菊)이 몽실몽실 꽃망울을 만들었다. 곧 망울 터트릴 기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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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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