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와 그의 새로운 책 <예감>오마이뉴스 남소연·이룸
"김지하(66)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물음에 한마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에는 '반파쇼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 섰던 열혈청년으로, 1969년 시 전문잡지 <시인>에 '황톳길'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주목받는 청년문인으로, 1970년대엔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던 진보운동 진영의 30대 명망가로…. 그의 삶과 존재는 한국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하며 끊임없이 변화했다.
박정희 사망 이후 감옥을 나와서는 '생명사상'을 전파하는 실천가로, 이후에는 율려학회를 조직해 '신인간운동'을 이끄는 철학자로, 회갑을 넘긴 21세기에도 동아시아의 전망을 예측하는 미래학자이자 과학적 예언가로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지하.
2007년 8월 현재 (사)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인 그는 여전히 '신화'나 '전설'이 아닌 당당한 현역이다. 요 몇 년 사이엔 시 창작활동도 왕성해 만년(晩年)에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40년 가까운 문필활동을 해온 터라 김지하의 저서는 손에 꼽기 벅찰 정도로 많다.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 <중심의 괴로움> <화개> <유목과 은둔>을 필두로, 산문집 <생명>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여기에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집대성한 <김지하 사상전집>과 <화두>, 뿐이랴. 보너스처럼 더해진 시화집 <절, 그 언저리>까지.
그리고, 오늘. 그가 자신의 이력에 한 권의 책을 더 보탰다. 특이하게도 이번엔 기행문집이다. '새로운 문명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기행'이란 부제가 붙은 <김지하의 예감>(이룸).
'최후의 국내파' 김지하가 지구를 떠돈 이유는...
"최후의 국내파"로 불리며, 동료문인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해외여행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작가"로 인식돼온 김지하. 그랬던 그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목숨을 다해 끌어 안아온 조국이 아닌, 바다 건너 생면부지의 땅을 헤매 다녔고, 그 체험을 책으로까지 묶었을까? 그는 왜 지구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고자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김지하의 대답은 이렇다. 아래, <예감>의 저자서문을 일부 옮긴다.
"내 속 깊은 곳엔 하루 빨리 토굴(자신이 속해 있는 둥지=남한)에서 벗어나 오대양 육대주를 훨훨 날아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특히 아시아와 서양을 둘러보며 동·서양의 비교와 통합을 내 나름으로 한번 생각하고 싶었다…."
젊은 시절, 이른바 '인텔리겐치아'인 자신의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을 동경하고, "거지로 떠돌지언정 구라파(유럽)에서 살고싶다"고 절규할 때. 김지하는 단호했다. 목적의식적으로 국내파로 남기를 작정하고, 민족문화운동과 동양학에 매진했던 것.
그것은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선 비인간적인 미국을 거부해야 한다'는 '젊은 김지하'의 지론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나이 육십을 넘겨서야 남한 탈출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순(耳順)을 지나 고희(古稀)를 앞두고 만난 새로운 길.
그 탈출 욕망의 키워드는 '동·서양의 비교와 통합'임이 분명하다. 최근 보여온 그의 행보가 작가보다는 미래학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기자의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이 대목에서 김지하의 역할은 지난 시대 '독재의 대항마'에서 '동서양 평화공존 운동의 실천'으로 한 단계 진보한다.
그 '진보적 실천'를 위해 김지하는 짧은 시간 안에 참으로 많은 나라와 도시를 떠돈다. 중국, 일본, 홍콩, 타슈켄트, 바이칼, 하바롭스크, 아테네, 프라하, 부다페스트, 로마, 파리, 런던, 보스턴, 뉴욕, 댈러스, LA, 라스베이거스, 워싱턴, 하노이, 후에 등 열거하기 숨가쁠 정도다.
중앙·동남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다닌 듯하지만, 천만의 말씀. 각각의 여행엔 김지하가 세운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을 뭉뚱그려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동·서양의 비교와 통합'. 세부적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책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미국에 대한 평가... 인식의 전환? 들뜬 감상이 부른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