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아프가니스탄 경찰 차량이 가즈니주의 탈레반에게 살해된 한국인 인질이 발견된 장소에 도착하여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AP=연합뉴스
여기에 이번 문제해결의 복잡한 방정식이 숨어있다. 탈레반 측이 이번 한국인들 납치를 통해 노린 것은 우선 자신들이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의 '정부'에 준하는 정치적 실체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중간 지점쯤에서 그런 의도를 간파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들 입에서 "탈레반은 그냥 테러집단이 아니라 5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세력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8월 들어서이다. 이는 초기대응에서 이 점을 소홀히 보았다는 반성으로도 들렸다.
정부는 사건발생 초기 '정부가 테러단체와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대로 한발 물러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통한 해결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대 테러 전쟁'에서 미국의 원칙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측의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군사행동 검토로 탈레반 측을 자극했다.
사건 발생 후 약 한 달간 현지대책반을 지휘했던 조중표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지난 19일 귀국 직후 브리핑에서 초기 대응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의한 군사행동 저지였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런 초기 분위기는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피살로 이어졌고, 이에 당황한 정부는 급히 대응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레반 정권과 친했던 국가들 동원
수정된 방향의 핵심은 탈레반을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선 과거 탈레반 정권과 좋은 관계에 있었던 국가와 국제기구, 정치인들을 찾아내 최대한 탈레반을 설득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일본 같은 아프간 원조국들에까지 도움을 청했다. 우선 더 이상의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고, 이어 이들의 중재를 통한 해결의 길을 모색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이 지난 25일 전격적으로 중동 3개국 순방에 나선 직후 '석방합의' 소식이 들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 장관이 방문한 사우디·카타르·아랍에미리트 3국은 탈레반 정권을 최초로 승인한 나라들로 아직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탈레반은 한국으로부터 하나의 '정부'에 준하는 대접을 받은 셈이고, 그것이 '석방 합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간 내에서 초라한 반군 세력으로 전락한 탈레반이 한국정부와의 협상장에 버젓이 나타나 두 차례나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제치고 한국 정부와 1대1 교섭을 벌였을 뿐 아니라, 중재역할을 한 이슬람 국가들로부터도 '정치적 실체'를 인정받는 성과까지 거둔 것이다. 청와대의 28일 발표도 그런 탈레반의 요구에 충실한 형식과 내용이었다고 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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