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현지도. 홍산현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지도로서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내려간 곳에 홍산현 관아가 보인다. 그리고 왼쪽 윗부분에 보면 무량사가 보인다.부여군, 『扶餘文化財大觀』, 2006
위는 홍산현지도(鴻山縣地圖)이다. 사진에서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 아래에 있는 게 바로 홍산동헌과 객사 등의 관청들이다.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향교이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위의 왼쪽에 2층의 건물과 작은 건물들, 그리고 석탑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바로 무량사와 주위의 암자, 그리고 무량사에 있는 무량사오층석탑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지도를 보면 흥미로운 게 지금과 비교해서 약간 부정확할지는 몰라도 자세히 보면 크게 차이가 없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데, 지도와 비교해서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는 존재했던 것들을 추측 할 수 있다.
홍산이란 곳은 예전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의 사람으로서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 정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이로 인하여 불만이 가득 차게 되자, 한현과 함께 선조 29년인 1596년에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반란은 순식간에 많은 민중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임천, 정산, 청양, 대흥을 잇달아 함락시키고 홍주성에까지 침범하게 된다.
이몽학은 여러 군사를 이끌고 홍주성까지 오게 되었다. 이때 홍주목사였던 홍가신은 그러한 이몽학에게 거짓항복을 한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서 군사를 모으고, 점차 관군은 이러한 이몽학에게 다가갔다. 결국 이몽학은 홍주성을 함락시키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에 덕산으로 달아나나, 결국 자신의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홍산동헌은 이몽학이 1596년 7월 6일 윤영현을 붙잡은 곳이다. 이곳부터 그 세력을 떨치고 이몽학의 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만한 곳이다. 이몽학의 난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홍산인지라, 홍산에는 이몽학에 대한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부여문화원에서 나온 <부여의 구비설화 2>라는 책에는 홍산 등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개중에는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이 중 2개만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이몽학은 어릴 적 덕림이라는 곳에 글을 배우러 다녔는데, 이몽학이 살던 곳과 덕림 사이에는 갯벌이 있었다고 한다. 이몽학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였다고 하는데, 하루는 큰 비가 내려 홍수가 져서 갯벌을 건너지 않은 애들도 서당에 오질 않았는데 이몽학은 홀로 제일 먼저 왔다고 한다.
서당의 훈장이 이게 의심이 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그날 공부를 마치고 슬쩍 따라나서 이몽학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았다고 한다. 이몽학은 뒷산으로 가서 유독이라는 풀의 줄기를 꺾어 자기 다리에 대어 자르고, 이를 다리 길이에 맞춰서 두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띄우고 건너갔다고 한다.
서당 훈장이 이를 보고 놀라면서 “저놈이 잘된다고 하면 큰 인재가 될 것이고, 만약에 저 놈이 못된다고 하면 나라를 망칠 놈이로구나. 자칫 잘못하면 큰 화를 입을 테니 내가 저놈을 가르쳐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다음날 이몽학이 오자, “나는 이미 너를 가르칠만한 능력이 없다. 내일부터는 여기 오지 말고 나보다 더 유능하고 훌륭한 선생님께 배우고 나라에 큰일을 해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바로 이몽학 오누이가 힘내기를 한 전설인데, 이몽학의 누이도 이몽학처럼 능력도 뛰어나고 똑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몽학을 보고 장차 위험한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이 때문에 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바로 목숨을 건 내기로서 성 쌓기 내기였다. 둘은 힘도 좋아 성을 쌓아올렸는데, 오누이의 어머니가 이를 차차 보니 누이가 좀 더 유리해 보였다. 이 내기가 목숨을 건 내기라는 것을 알자 어머니는 딸은 죽을지언정 아들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꾀를 하나 낸다.
어머니는 딸에게 가서 아침을 만들었으니 이를 먹고 일하라고 하였다. 누이는 순순히 말을 듣고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바로 뜨거운 팥죽이었다고 한다. 결국 팥죽을 다 먹고 내기를 하던 곳에 가자 이몽학은 이미 성을 다 쌓았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누이는 결국 죽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곳에 가면 형제바위, 즉 오누이바위가 있다고 전한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5월 19일 부여 홍산 일대에 답사갔다 온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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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관아건물의 대표 홍산동헌, 그리고 이몽학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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