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통문화예술원전수실 전경.문경숙
일초 스님은 어렸을 때 병약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불가에 의지하면 장수할 수 있다 하여 불심이 깊으셨던 그의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기도 포천 금룡사의 봉창현 스님의 불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스님의 길을 걷지 않으면 단명한다는 말이 일찍이 출가한 이유였다. 금룡사에서 본적인 배움을 익히며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조계종에서 7년을 수행했다.
범패와 작법무는 모든 불교의식을 총망라하는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 노래, 춤 이 셋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득음을 하는 과정에서 세 번의 각혈을 쏟아 병원 신세를 졌고, 폐결핵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때 가졌을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수자의 길을 걸으며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스승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스님에게는 자신이 창건한 부평 불자미 자원사가 중심점이다. 86년 문을 연 이래 신도수가 2천여 명을 헤아린다. 모든 신도들 역시 범패와 작법무를 널리 알리는데 한결같이 동참하고 있다. 스님의 국내외 공연에 자발적인 스폰서가 된다.
그는 범패와 작법무를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무대에 널리 알리는 데 인생을 걸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주 전통문화센터, 실크로드 정기초청공연 등 전국 단위 무형문화재 공연행사에 참석, 인천의 범패와 나비춤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사할린 홈스크시와 유즈노에서 한인 위문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공연할 때 민간 문화외교사절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천 홍보도 잊지 않는다. 공연무대에 올려진 태극기 옆에는 꼭 인천시 고유마크가 새겨진 깃발도 함께 걸어 놓는다고 한다.
누군가가 호기심으로 질문해오면 그때 인천과 인천시의 무형문화재에 대해 친절히 설명한다. 이렇게 11개국을 돌았다.
인천시무형문화재협회장으로서 인천시가 추진하는 무형문화재전수관 건립이 원만하게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일초 스님은 "무엇보다도 무형문화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확충과 경제적 지원으로 전통문화 전수활동에 보다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이들이 연습실 하나 없이 떠돌며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후진양성에 매진하지 못할 때 안타깝기 한이 없다"고 말했다.
출가를 안 했다면 아마도 무용가의 길을 걸었을 거란 일초 스님, 그의 종교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요즘 너무나 많은 종교들이 생겨나고 그로인한 폐단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믿든, 모시든 그 근본으로 들어가면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착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 다 자신이 믿는 그 안에서 착하게 살고 또한 이 땅의 국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한편 일초 스님은 인천 부평동 인해전통문화예술원을 연습실로 전수생을 강습하고 있으며 배우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종교에 가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