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문국현 후보-이인영 의원 대담 기사에 올라온 독자의견들.
"1인 미디어 환경...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런 동맹"
밖으로 나가보자. 뉴미디어를 분석하는 최진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인터넷에 드러난 문국현 현상에 대해 "1인 미디어가 참여형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02년'과 비교했다.
"2002년에는 '노사모'라는 특정한 정치세력이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인터넷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 속에서 정치 흐름이나 이슈가 생성되고 있다. 정치그룹이나 이슈메이커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런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 다른 정치메커니즘이다. 주요하게 봐야 할 대목이다. 되레 정치인이 주도하면 역효과가 난다. 정치인은 메시지나 콘텐츠를 던지고 언론은 이들의 소통을 주의 깊게 정리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게 아닌가 싶다."
2002년은 댓글이나 핸드폰 수준에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면 5년이 지난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수준인 블로그나 UCC 등 '1인 미디어'가 주도하는 환경이다. 실제 '문국현' 관련 기사가 블로그 전문 사이트에서도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국현 현상은 이러한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정치현실이 작용한 결과다.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발언 기회가 없었던 것. 그런 차제에 때마침 문국현이 던진 메시지가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흩어진 말의 진지를 다시 구축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문국현 캠프의 자체 분석을 들어보자.
공보를 담당하고 있는 고원 박사(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386세대와 정치의식변화연구' 논문)는 "인터넷은 문국현의 정치적 자산이 가장 높은 공간"이라며 그동안에 보여진 냉소와 무관심에 대해 "좌절된 침묵 아닌 갈망을 분출할 시점과 계기를 고르고 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경선 승리와 월드컵, 정몽준 등으로 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후 지금까지는 억압되거나 지연되어 왔다는 얘기다. 최근 한나라당의 경선도 '이명박 대 박근혜'라는 박빙의 승부가 있었고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다고 할 수 있음에도 대중적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범여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사람들은 대선을 심심하게 그냥 놔두질 않는다.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 때문이다. 눈물, 감동, 그런 오랜 에토스(집단적 성격)가 있다. 나라마다 에토스가 다른데, 가령 미국은 자유주의적 개방성, 북유럽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전사적 기풍, 섬나라 일본과 영국은 외부 팽창욕, 이슬람은 종교에 관한 역동성이 있다. 그런 에토스가 정치가 이륙하는 출발지인데 문국현이 그걸 끌어낸 것이다. 울고 싶은데 빰 때린 격이거나 눈물샘을 바늘로 콕 찌른 셈이다."
"좌절된 침묵 아닌 분출 기회를 기다렸다"
급속히 생성된 '문빠'(문국현 지지자)들은 발에 불이 나게 움직이고 있다. 문국현 캠프에서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되기도 전에 '세일러문' '문지기' '문함대' '문스머프' '창조한국' 등 자체 팬카페를 개설했다. 지난 주말(25일) 오픈한 공식 홈피(m2007.org)는 되레 욕(?)을 먹고 있다. "글 입력이 불편하다" "글씨가 작다" "메뉴 바가 너무 많다" 등등 "홈페이지의 활기는 멋진 디자인에서 오는 게 아니라, 역동성에서 온다"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가 쇄도한다.
문 캠프는 아직 조직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 정책은 완료되었지만 정무 인력이 부족하다. 이렇다할 사무실도 없이 "둥둥 떠다니다가" 28일께 입주식을 갖는다고 한다. 홈페이지도 내부사정으로 급하게 열었다며 '임시 개설'임을 강조했다. 최근 문 캠프에 합류한 김헌태 정무특보(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노무현은 감성 중심이었고 문국현은 콘텐츠 중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접 소통 면에선 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취약성을 네티즌들이 '커버'해주고 있다. 이들은 이미 본선에 뛰어들어 싸우는 전사 같다. 아이디어를 짜내 캠페인 구호를 만들고, 전략과 전술을 제안하며, 이명박과의 가상토론회 시나리오를 만들어 관전평을 내놓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결합 문제에 대해서도 "왜 꼭 범여권에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냐"며 "밖에서 치르는 검정고시를 보라"고 압박한다.
왜 이렇게 열광할까? 도올 김용옥은 "돌풍"이라고 표현했다. 좀더 정치적 요인을 따져보자.
우선 '프레임'이 다르다. 기존 정치권에선 친노, 비노, 반노만이 존재했다. '노무현 프레임'. 미래가 아닌 과거 프레임이다. 여권은 이 노무현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지만 신뢰와 콘텐츠가 부족했다. 노무현을 극복할 인물과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보수 진영의 공격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방어 논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아니 빌미를 줬다. 대표적 '친노'라는 유시민 의원도 인정했다. 2002년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에게 지치고 짜증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던 것. 여기에 '문국현 프레임'이 제시된 것이다.
또한 올해가 '87항쟁' 20주년이라지만 민주화 세력은 "잃어버린 10년" "민주화 세력 무능론"에 상처받고 주눅 들었다. 문국현은 "지난 10년은 IMF 외환위기가 초래한 100만 대실업의 후유증을 초래하는 과정"이었고, "거대기업의 의사결정이 잘못돼서 중소기업, 벤처, 비정규직 등이 대가를 치른 것"이라며 "후유증을 열심히 치료한 의사나 병원을 탓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의 누구보다 문국현의 말은 냉가슴을 앓았던 이들에게 후련한 무엇을 주었다. 고원 박사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설득력이 달라진다"며 "문국현은 살아온 삶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한다. '온건한 진보'쯤에 있는 문국현이 과거 '노빠'였거나 민주노동당 주변을 어슬렁거린 이들에게 다시금 화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