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 결심이자 끝 마무리인 공항제정길
밴쿠버 섬을 오가는 배(훼리)에서 내린 차는 바로 시애틀로 머리를 돌렸다. 한낮이 넘었다고는 하나 여름의 태양은 아직도 그 입김이 만만찮게 뜨거운데, 우리가 탄 차의 맥빠진 에어콘으로는 그들을 막아내기가 힘에 부치었다. 예상대로 차는 털털거렸고 앞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좌석은 불편하였다. 사람들은 차안에서 별로 말이 없었다. 기숙학교를 졸업한 학생과 그 어머니는 맨 뒷자리에, 최 선생 내외와 동행은 중간 열에, 나는 운전석 옆에 각각 널부러져 멀어져가는 캐나다의 접경지역을 무료히 쳐다보았다. 길옆의 나무들도 집들도 멀리 낮게 내려 앉은 산들도 산머리에 기댄 구름들도 저들도 제 각각 널부러져, 떠나는 우리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가이드이자 운전기사인 이 선생만 바쁜 와중에도 한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지나치는 주변 경관의 짧은 설명에 이어 기나 긴 그의 이민사를 독백하듯 쉬엄쉬엄 풀어놓았다. 잘 살아보려고 30여년 전에 그가 택한 여행길은, 여행길을 떠난 사람들을 도와주는 업(業)으로 멈추어 섰고, 그는 그의 업에 별반 회한 같은 것은 없어보였다. 조심스럽게 내가 물어보았다.
"이민 온 것 후회해 본 적은 없으세요?"
"후회는요,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자식 공부시키고 이만큼 살 수 있었겠어요?"
그는 지난해 같이 이민 왔던 조강지처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한국여성과 재혼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를 재취업하게 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밴쿠버 섬까지 우리를 쫒아오게한 숨은 이유는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좀이라도 젊은 아내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힘들고 벌이 안되는 밴쿠버-시애틀 간의 관광객 운송이 주로 그의 담당이라는 말을 듣자 가슴 밑바닥에 어디로부터 연유하는지 모르는 강물이 쏴아 하고 흘렀다. 과연 생이란 여행은 누가 떠나고 싶어해서 떠나는 여행인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