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를 올리고 주청하는 신하들. 사진은 특정사실과 관계없는 재연 장면입니다이정근
대신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임금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자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며 윤허를 청했다. 임금과 신하의 힘겨루기가 계속 되었다. 형조와 대간(臺諫)의 간원들이 퇴궐하지 않고 3일 동안 밤을 새며 이숙번의 죄를 청했다.
"이숙번은 두 번이나 사지(死地)를 같이 겪었으니 그 공이 크고 중하다. 그러나 일에는 경중이 있으니 내가 어찌 구처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순리대로 하겠다."
이숙번과 함께 광화문 앞에 천막을 치고 아버지를 향한 무인혁명을 성공시키던 일과 형 이방간을 치던 일을 상기하는 말이다.
날개가 있어야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
임금이 한발 물러섰다. 순리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리가 무엇이냐가 문제다. 임금의 회유에 물러설 대신들이 아니었다. 좌의정 유정현의 상소에 이어 병조판서 이원의 상소가 올라왔다. 그래도 임금이 꿈적하지 않자 형조와 대간에서 교장(交章)하여 청했다.
"모든 대소신료가 이숙번의 죄를 청하였으나 겨우 관문 밖으로 나가도록 하니 아직 그 연유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답답합니다. 전하께서 말씀하기를 '이숙번은 내가 자식같이 여긴다. 근래에 과실이 있어 그를 밖으로 내보내어 그가 개과(改過)하기를 기다리니 죄를 청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그를 아들같이 하는데 이숙번은 어찌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로서 전하를 섬기지 아니합니까?
대소신료가 비록 그 범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 반드시 그 죄가 종묘사직에 관계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 그 죄를 다스리지 않고 개과하게 하고자 하니 이것이 신들이 실망하는 까닭입니다. 전하께서 유사에 영(令)을 내려 그 직첩을 거두고 그가 범한 죄를 물어서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심으로써 방헌(邦憲)을 바로잡으소서."
"이숙번의 녹권과 직첩을 거두어라."
태종의 명이 떨어졌다. 임금이 물러선 것이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되어 왔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숙번의 녹권과 직첩이 거두어졌다. 부귀영화의 보증수표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목숨이 위태롭다. 날개가 있어야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데 이숙번의 날개가 꺾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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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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