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검증 시스템? 사회 더 파탄난다"

[인터뷰]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 "대학 평준화가 대안이다"

등록 2007.08.24 10:04수정 2007.08.25 16:36
0
원고료로 응원
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
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한양대학보 유광석

"유명인 허위 학력 논란, 너무 흥미 위주로 흐른다. 이건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유명인들 학력) '탈탈' 털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거짓말 한 사람 윤리적으로 옹호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학벌 사회 성찰이다."

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신정아씨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작된 '학력 검증' 광풍에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학벌 사회를 고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마녀사냥"이라는 게 그의 현실 인식이다.

하 사무처장을 만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최수종·주영훈 학력위조 논란'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학력위조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신정아·정덕희·윤석화·김옥랑·이현세 등의 뒤를 이어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무학력자 성공담? 허위의식만 심어준다"

사실 <오마이뉴스>의 제보게시판에도 '누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식의 제보가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제보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확인해 보면 학력이 허위가 아니라 제보가 허위인 경우도 많다.

언론사만 바빠진 게 아니다. 대학도 바빠졌다. 연세대·고려대 등은 "학력 조회 요청이 평소보다 두 배는 늘었다"고 밝혔다. 의심과 의심이 꼬리를 물고, 비난의 대상이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위 위조를 부추기는 학벌 중심 사회의 성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까? 하 사무처장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현재는 학벌 중심 사회를 성찰하는 좋은 기회다.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는 건 좋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로 '학력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는 결국 더욱 강력한 학벌의 철옹성을 쌓겠다는 것이다."


하 사무처장의 말은 단호했다. 그는 "학력 검증 시스템은 학벌의 가치를 더 높이고, 결국 큰 사회적 파탄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결국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져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모두 그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하 사무처장은 최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2일에도 총 열 건의 인터뷰를 해야한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전화기는 쉴새 없이 울렸다. 대부분 그의 '멘트'와 조언을 듣고자 하는 기자들이었다.


그는 "학벌 중심 사회의 모순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라서 최대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접하는 그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하 사무처장은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학벌 없이도 성공한 사람을 소개 시켜달란다. 무학력자의 성공담? 학벌 사회의 문제점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일제 시대 때 성공한 조선인 천 명, 만 명 나열한다고 그 시대의 모순이 정당화되나? 개인의 성공담은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에게만 화살을 날리고, 학벌 중심 사회에서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허위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하 사무처장의 처방과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흥미 위주 보도를 자제하고 학벌 사회를 바로잡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대학평준화와 인재할당제를 제안했다.

"한국 사회의 상층 권력을 소위 '상위 대학'이라 불리는 몇몇 대학 출신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이걸 부숴야 한다. 이건 의식의 변화로 바뀌는 게 아니다. 공공 부분도 상위 대학이 다 지배하고 있다. 대학평준화와 인재할당제가 답이다. 이게 가능하면 교육도 정상화되고 학벌 중심 사회도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대학 평준화가 대안이다."

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
하재근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한양대학보 유광석
사실 친근하지 않은 생소한 제도이고 제안이다. 하 사무처장은 "사람들은 대학이 평준화되면 사회가 망하는 줄 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공산주의 하자는 말이냐'고 묻는다"며 "2007년을 대학평준화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원년으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교육의 모델은 이제 미국이 아니라 핀란드,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서유럽 국가"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대학 평준화를 이야기하면 구체적인 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먼저 '내 자식은 일류대에 보내야 한다'는 것부터 포기해야 한다. 그런 정치적 합의를 하고 함께 고민해서 상을 만들어 가자.

약자와 타자에 대한 극단적 냉혹함. 그리고 극단적인 승자 독식주의. 이게 바로 대한민국 학벌 사회의 특징이다. 경마 도박을 보면 1등에게 모두 몰아주지 않나. 우리 교육과 사회는 그런 경마와 같다. 승자 독식을 내면화한 학생은 어른이 돼서도 소수가 부자고 다수가 가난한 양극화 사회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다. 왜? 말 그대로 승자 독식이니까."


하 사무처장은 올해 안으로 대학평준화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교육운동 모임은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하고, 토론을 하면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게 그의 믿음이자 주장이다.

하 사무처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언론계에 학벌 폐지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의 권력 기구인 언론도 스스로 지방 대학생 할당제를 실시하라는 것이다.

그는 "돈 많은 강남 학생들이 일류대를 장악하고, 언론 고시를 통과한 이들 역시 강남 출신이라면 언론계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겠는가"라며 "최근 허위 학력 논란 보도 태도를 보면 언론이 과연 학벌 철폐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력위조 #하재근 #학벌없는사회 #대학평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