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일상적인 공간에 우뚝 선 초대형 태극기정윤수
며칠 전부터 동네 앞에 거대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는 지하철 역 입구로부터 작은 공원이 시작되어 신호등 하나를 건너고 나면 어림잡아 약 2km에 걸쳐 큰 폭의 공원 길이 펼쳐지는데, 사시사철 리듬에 따라 그 길을 걸어 출퇴근하는 맛이 사뭇 정겨운 산책에 다를 바 없다.
굳이 그 유명한 호수공원까지 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소요와 놀이가 가능한 공원 길이다.
보행로 한복판을 '점령한' 초대형 태극기
그런데 그 초입에 거대한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지난봄부터 지하철 입구의 작은 공원을 뜯어고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초대형 스테인리스 깃대봉(?)과 특대호 태극기로 화룡점정을 한 것이다. 흡사 '상징과 그 효과'라는 주제의 미술 전시회 출품작처럼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누가 태극기를 보행로 한복판에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그것도 엄청난 질량감의 깃대봉을 세우고, 그 위에 축구 경기 때 응원용으로 쓸 만한 초대형 태극기를 매단 것일까. 저와 같은 우람한 상징이 일상 공간의 대표적인 시각 이미지로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현대사의 우여곡절에 의하여 태극기에 대한 일반적인 심정은 복잡다단하다. 6·25전쟁과 그 이후의 비극적 상황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그들을 위하여 태극기는 장엄하게 휘날렸다. 오후 6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에 맞춰 일체의 행동을 삼가던 때도 있었고 독재자의 귀국 길에 연도에 늘어서서 흔들던 비에 젖은 태극기도 있었다.
세상이 한결 부드러워지면서 월드컵 응원 때의 태극기 패션 같은 흥미로운 집단 퍼포먼스도 있었는데,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여전히 태극기는 경건한 무게와 다의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