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킈강이형덕
지루한 평원이 끝날 무렵, 산자락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을 넘어 '싸이한 캠프'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언덕 아래 게르 여남은 채가 포근히 자리잡은 캠프는 바로 곁에 강을 두고 있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거름에 검붉은 노을에 젖은 강은 며칠 동안 모래벌판만 달려온 여행자에게는 한마디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싸이한(Sayhan; Saikhan)'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폭이 십 미터쯤 되는 개울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강이라 불렸다. 강 이름을 물으니, '엉킈' 강이라 한다. 몽골의 전통 양고기 요리인 '헐헉'이 준비된 저녁 식사 자리에는 캠프 여주인이 몸소 나와서 인사를 했다. 한국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다며 와인까지 따라주는 여주인은 본업이 의사라고 했다.
나무를 때어 데운 온수로 몸을 씻고 나오니, 어두운 강 위로 드디어 고비의 별들이 나타났다. 그동안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초원의 별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별에 취하여 망원경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붉은 모래사막을 지나, 강에 이르러 만나는 별들은 더욱 맑았다. 검은 가죽을 덮고 낮게 내려앉은 밤하늘은 손을 뻗으면 별들이 쟁그랑 소리를 내며 우르르 쏟아질 듯했다. 빈 자리 없이 하늘을 겹겹이 채워 미처 별자리마저 더듬기 어려웠다. 한 무더기 은하수가 머리 위에서 박하향을 풍기며 흘러갔다. 밤은 별빛만큼 깊어가고, 낙타처럼 누운 검은 언덕 위로 늑대의 눈을 닮은 푸른 달이 떴다. 사람들은 달에 홀려 늑대처럼 울어댔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몽골의 신화 한 도막이 생각났다.
하늘 저편에는 고비보다 더 큰 초원이 있는데, 밤이면 양치는 목동들이 모닥불을 피운다. 목동들이 몸에 덮기 위해 가죽을 펼치는데, 가죽은 오래되어 여기저기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내보이는 모닥불빛이 바로 별빛이다.
자정이 되어 발전기도 멈추고, 사방은 온전한 어둠의 적요 속에 남는다. 멀리 어두운 초원 저 편으로 별 하나가 떨어진다. '별빛에 타박상을 당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눕거나, 서로 떨어져서, 이 황홀한 내상(內傷)을 되도록 혼자서 감당하려고 애썼다. 우리 하나, 하나가 이 고비의 밤에 뚫어진 작은 구멍 사이로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을 누군가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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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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