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전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된 환도 후의 풍경부산시
불구경 많았던 시절
부산은 1950년대뿐만 아니라 60년대와 70년대까지 크고 작은 화재가 유난히 많았던 도시다. 화재의 원인은 수도 피난민의 판잣집이 대개 원인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바다의 거센 해풍에 불길을 잡을 수 없는 큰 화재로 번져갔다.
중앙정부가 환도한 22일 만에 일어난 부산역 대화재. 근처 동리는 거의 초토가 되었다. 이는 전쟁의 간접적인 화마였다. 수도가 환도한 후 피난민이 두고 떠난 판잣집의 화마를 다시 건설하는 힘든 업을 떠맡은 부산, 그 화마로 인해 피해를 유난히 많이 본 곳은 부산시 중구 중앙동 40계단 주위 일대이다.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본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은 몰라도 다 알려준다. 사진의 기록은 이런 의미에서 그림보다 위대하다고 할까. 40계단에서 부산역 방향으로 약 150미터쯤 되는 곳과 그 곁에 야트막한 언덕 같은 산이 두 곳 있었는데, 이를 쌍산이라 불렀다. 쌍산 주변 아래 해안엔 논치어장이라는 정치망(定置網, 자리그물) 어장이 있었다. 40계단의 윗길은 지금의 초량방면으로 통하는 산길로 영선 고개라 불렀다.
1876년 강제 개항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을사보호 조약 이후 대륙침략을 꿈꾸며 부산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부산항 확장 공사를 실시하고, 1902년 부산북빈매축공사를 시행한 현장으로 1905년 당시 40계단은, 부산 북항 일대로 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