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국의 퍼스트레이디>황금가지
1971년 겨울 육영수 여사는 전북 익산군에 있는 나환자(한센병) 정착촌을 찾았다. 웃으면서 그들의 손을 덥석 잡기도 했고, 그들이 내놓는 고구마를 나눠 먹기도 했다. 이후 나환자에 대한 국민 인식이 바뀌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거 때마다 소록도를 비롯해 나환자촌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린 최형우 전 의원도 부인 손명순 여사가 아니었다면 다른 길을 갔을 가능성이 높다. 3당 합당 당시 '죽어도 안 따라간다'며 버틴 최 전 의원을 손 여사가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합류하게 만든 것.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손 여사는 민정계 인사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남편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노력은 경선에서 그대로 결과로 나타났다.
지금 대통령 영부인의 위상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그의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하고, 추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력한 영부인'으로 불렸던 이희호 여사의 경우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퍼센트 이상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한 만큼, 차기 영부인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안방 내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영부인의 생각과 활동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해 12월엔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펼쳐진다. 선거가 끝나면 자연스레 '미선출 권력'인 영부인의 자리도 마련된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 대선엔 유례없이 많은 여성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져 '영부군'(퍼스트 젠틀맨, First Gentleman)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한국의 퍼스트레이디>(조은희 지음, 황금가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제1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에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까지 8명 대통령 영부인들을 담았다.
미국 아메리칸 대학에서 선거 캠페인 최고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조지타운 대학에서 대통령학을 공부했으며 1998년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하기도 한 조은희씨가 글을 썼다.
파국 앞에선 결국 퍼스트레이디도 힘이 없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저자가 청와대 근무 경험을 살려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얻은 자료와 들은 이야기를 책 속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저자는 양아들 이강석의 자살과 이 대통령의 하야를 기록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영문 친필 비망록을 최초로 발굴했다. 비망록엔 다음과 같은 세 구절이 쓰여 있다.
"강(양아들)이 저녁 8시에 (경무대에) 왔고 같이 성경을 읽었다."(4월 27일)
"오후 2시 반에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이사했다. 강석의 가족이 죽었다."(4월 28일)
"10시에 (강석) 장례식이 있었다."(4월 30일)
영부인들의 출생과 공식 활동은 이미 이전에 나온 여러 책을 통해 잘 알려진 터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볼 대목은 당사자와 측근들만 알 수 있는, 부부간 속내에 관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구박했다. 가끔씩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아들도 못 낳는 주제에…"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기붕 박마리아 부부에게서 굳이 이강석씨를 양자로 받아들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박정희 육영수 부부의 결혼식날 주례를 맡은 대구시장 허억씨가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이라고 해서 웃음바다가 됐다는 일화도 재미있다.
안타깝게 느낀 대목은 영부인 중 일부는 활달한 성격을 지녔다가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조용한 내조자로 변했다는 점에서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인 공덕귀 여사는 걸음걸이가 남자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활달했다. 하지만 명문대가에 시집가면서 치마 길이, 머리 모양 등 외모 치장까지 시어머니와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노래 솜씨가 좋고 말솜씨가 탁월했던 이희호 여사는 명랑 쾌활했던 성격이 정치인의 아내로 풍상을 겪으면서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중년 후에도 계속 활동을 했으면 사회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을 터인데 풍상을 겪는 동안 성격이 변했나 싶어 참으로 아깝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책을 통해 드러냈다.
여기에 파국을 내다봤으면서도 결국 막지 못한 영부인들의 속내를 대할 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 규정을 없앤다는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이 사사오입 해석으로 변칙 통과됐을 때, 프란체스카 여사는 올리버 박사와 함께 '대통령을 그만 둘 것'을 권했다. 1960년 선거를 앞뒀을 때도 출마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비쳤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내쫓기다시피 권좌에서 물러났다.
'청와대 내 제1야당'이라 불렸던 육영수 여사도 정작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안이나 유신 입법 앞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자는 "그녀에게 대세의 흐름을 막을 힘을 없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두환 신군부를 지지한 윤보선 전 대통령을 바라보던 공덕귀 여사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공 여사는 두 아들과 함께 '제발 가만히 있으라'며 남편을 말렸다. 말리는 공 여사와 윤 전 대통령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단다. 민주화 동지들이 공 여사를 멀리 하기 시작하자, 공 여사는 차라리 남편이 일찍 돌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책에서 공 여사의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박영숙 여성재단 이사장은 공 여사가 인생 후반기 민주화 운동에 열심히 나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아무리 유능해도 나설 수 없었던 정치인 아내 시절과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한이 후일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교회개혁운동으로 발산되었을 것이다."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던 남편을 둔 부인들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