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국가보다 민족 개념 확대 필요

UN 권고 이유 있지만 아쉬워, 구체적 내용 없어

등록 2007.08.22 10:54수정 2007.08.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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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따르면 최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한국이 실제와는 다른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며 한국의 폐쇄성에 태클을 걸었다.

UN의 권고는 분명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다. 한국 사회가 좀더 확대된 민족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모의 동시성'에서 출발하는 순혈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제로 UN의 지적처럼 굳이 '너와 나'를 구분하는 다민족 개념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순혈주의 극복을 통해 각종 인종차별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는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식 민족개념이 대안

유태인들에겐 존경스러운 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세계시장경제를 주름잡고 있어서도 아니고, 그 민족에서 예수라는 성인이 탄생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나라를 잃고 떠돌면서도 유구한 세월 동안 탄탄하게 명맥을 이어온 그들의 '민족개념'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유태인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도 유태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유태인들도 그가 유태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만 유태인일 뿐 어머니는 독일인이다. 공교롭게도 유태인들에게 독일은 원한관계가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쯤 되면 우리의 민족개념이 무엇이 문제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부와 모' 둘 다 한국인이어야만 '한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순혈주의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와 모 중 하나만 한국인이어도 그를 단순히 '법적 한국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민족'으로까지 포용하는 넓은 의미의 민족 개념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그 비슷한 사례들은 이미 우리의 역사 속에도 있다. 이방인들을 '한민족'으로 포용한 것이 전혀 생소하거나 쌩뚱 맞은 일이 아니란 얘기다.

조선은 왜군도 조선인으로 받아들였다


폐쇄성에서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선조차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에 반대해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조선에 투항해 온 일본 장수들을 조선군으로 편입시켰다. 경상도에는 지금도 그들의 후손이 살고 있다.(KBS 역사스페셜, <항왜>편)

고려시대에는 조선보다 더한 사건도 있었다. 고려는 국제교류가 활발한 사회였다. 고려 말에는 이슬람 상인(서역인)들이 대거 개성인근으로 이주해왔다. 고려는 이들에게 정착해 살집을 마련해주는 등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한편, 장이란 성씨를 하사하기도 했다. 이들이 고려인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점차 고려인화 되면서 지원정책을 멈췄다고 한다. (<이슬람문명> 정수일 저)

박철희 경인교대 교수는 올해 학술지 <교육사회학 연구>에 발표한 글을 통해 '고려시대 귀화한 이민족 숫자가 23만8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겨지지만 않았을 뿐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이나 집단 이주 과정 등을 통해 이민족이 한민족 안으로 흡수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한민족도 이방인을 포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UN의 권고는 '유감'

물론, UN이 단순히 한국의 민족주의만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UN은 국제결혼, 자발적 의사에 의한 귀화자, 혼혈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 등을 경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UN이 이런 현안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지도 않으면서, 대뜸 민족문제를 들고 나와 일부 한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외교적 수사'의 실패로밖엔 안보인다. 또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은 유감스런 대목이다.

특히 민족문제를 거론하면서 다민족문화가 대안인 것처럼 제시한 점은 더더욱 유감스럽다. UN이 다민족국가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사회에서 다민족국가로 대표되는 나라로는 미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아무런 대가 없이 다민족국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토착민(인디언)과의 피의 전쟁이 있었다. 또 그들 원주민을 내몬 자리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데려와 다민족국가의 기초를 다졌다.(이게 과연 권장사항이란 말인가.)

현대 사회에서 다민족 국가라고 폼 잡고 있는 여타의 나라들 역사 역시 대부분 '지배 인종과 피지배 인종'의 관계에서 시작됐다. 이들 사이에 평등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나라들이 인종차별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유태인(민족)과 미국(다민족)의 예처럼 '다민족국가'와 '민족개념의 확대'는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UN이 지적한 것처럼, 유전자 감식 기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순수혈통의 단일민족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UN이 그런 환상을 벗어나는 대안으로 '다민족 국가'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은 여러모로 유감스럽다.

그러나 '스승이 바담 풍 해도 제자는 바람 풍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 UN의 권고를 한국정부나 한국민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다민족 사회 아닌, 순혈주의 극복이 우선

UN 권고의 핵심이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라면, 그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순혈주의 문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부와 모의 동시성에서 출발한 순혈주의를 극복한다면, 최근 농촌총각 등 국제결혼을 통해 늘어나고 있는 혼혈아들에 대해서도 차별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인과 혈통관계는 전혀 없지만 한국국적을 취득한 귀화자들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고려에 정착한 이슬람인들처럼, 결국 외국인 귀화자의 후손들 중 상당수는 한국인과 혼인해 아이를 낳고 그들 또한 어엿한 한국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귀화자나 혼혈아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에 대한 해법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법안의 구체화나,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나와야지, 민족 차원의 문제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전적 연구나 실제 우리의 역사에서도 순혈주의가 일정부분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나는 상황에서, 또 UN의 권고까지 나온 마당에 득보다 실이 크지 않다면, 이참에 민족주의 개념을 조금 더 확장에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다민족 #순혈주의 #민족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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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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