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이미지로 '검증' 파고 뛰어넘었다

[분석] 이명박은 어떻게 '경선 전쟁'에서 이겼나

등록 2007.08.20 16:31수정 2007.08.20 16:38
0
원고료로 응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가 지난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가 지난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20일 당내 최대 라이벌 박근혜 후보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당 대선후보가 됐다.

두 사람의 당내 경선을 가리켜 "한 반의 1·2등이 전교 1·2등을 다투는 것"이라고 비유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힘든 경선이었기 때문에 이 예비후보의 당 대선후보 등극은 청와대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당 대표와 서울시장에서 나란히 퇴임했던 작년 6월만 해도 이 후보가 결국 대선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한나라당 의원은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정두언 의원 정도에 불과했고, 이재오 의원은 작년 7월 당 대표 선거에서 박 후보 측의 지원을 받는 강재섭 대표에게 분루를 삼켰다.

이 후보는 어떻게 당심과 민심을 함께 잡을 수 있었을까? 이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기를 잡은 몇 가지 요인들을 정리해봤다.

이명박 지지율 견인차 된 '경제' 화두

<국민일보>가 연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능력으로 38.8%가 '실물경제 판단과 예측'을, 19.6%가 '국내정치 지도력'을 꼽았다. "경제인 출신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43.6%)도 '정치인 출신 대통령'(22%)을 선호하는 의견의 2배에 육박했다.

'차기 대통령의 조건'을 묻는 여타 여론조사에도 경제와 시장을 최대 화두로 꼽는 경향이 그대로 이어졌다. 경제전문가 출신의 지도자를 바라는 민심은 이 후보의 지지율 고공 행진으로 이어졌다. 이 후보의 지지율은 한때 50%를 넘어서기도 했는데, 지지율 '조정'을 받은 후에도 2위 주자인 박 후보에게 한 차례도 수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국민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느낄수록 기업가 출신의 이 후보가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한층 높은 점수를 얻게 됐고,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에 쌓은 청계천 복원·버스전용차로 등의 실적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떠받쳤다.

이런 가운데 '빅2' 사이에서 고민하던 당심도 점차 이 후보에게 쏠리기 시작했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1년 전만 해도 박 후보에 비해 조직력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후보가 김덕룡·남경필·전여옥 의원을 잇달아 영입하며 세를 불린 것도 경제인 출신 대통령을 기대하는 민심에 힘입은 측면이 많다.

이명박 '방패' 뚫지 못한 검증의 '창'

연초부터 한나라당을 강타한 '후보 검증'은 이 후보에게 최대 시련으로 다가왔다.

전직 비서였던 김유찬씨의 '위증 교사' 의혹 제기를 시작으로 ▲ 충북 옥천 임야 투기 의혹 ▲ (주)다스 실소유주 의혹 ▲ 도곡동 땅 차명 은닉 의혹 ▲ 천호동 뉴타운 개발정보 유출 의혹 ▲ BBK 금융사기 연루 및 공동소유 의혹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 후보를 괴롭혔다.

경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BBK 사건의 장본인 김경준씨가 9월 귀국설을 흘리고 검찰이 13일 도곡동 땅과 이 후보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듯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도 막판 표심을 흔들어 놓았다. 검찰 수사와 달리 '위증 교사'가 시도됐을 가능성을 보여준 녹취록이 공개된 것도 이 후보의 도덕성에 적잖은 부담을 줬다.

그러나 계속되는 검증 공방에도 이 후보의 지지율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캠프는 "이 후보는 네거티브 한 방에 무너진다"며 '불안한 후보론'을 역설했지만, 적어도 이러한 공세가 경선 국면에서는 먹혀들지 않았다.

도곡동 땅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이 후보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0.5%를 넘었으면서도 이 같은 여론이 이 후보 지지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SBS의 여론조사(16일)는 검증 정국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02년 대선에서는 감사원장과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한 데 비해, 이 후보에 대해서는 "1960~70년대에 건설업에 종사한 사람이 아주 청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 수 접어둔 결과가 아니냐는 얘기다.

그동안의 네거티브 공방이 위장전입을 제외하고는 이 후보에게 똑떨어지는 허물로 부각되지 않은 것도 이 후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이 후보가 당 대선후보가 된 후 결정적인 허물이 드러날 경우 지지율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 후보가 워낙 강도 높은 검증을 견뎌낸 만큼 본선이 예선보다 오히려 손쉬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 이재오, 심재철, 고흥길, 진수희 등 이명박 대선 경선후보 캠프 의원들은 검찰의 '도곡동 땅 의혹` 수사 발표와 관련해서 14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한나라당 이재오, 심재철, 고흥길, 진수희 등 이명박 대선 경선후보 캠프 의원들은 검찰의 '도곡동 땅 의혹` 수사 발표와 관련해서 14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아프간 사태와 정상회담이 '조용한 경선' 만들어

경선을 한 달 앞두고 아프간 인질사태와 남북정상회담 발표 등의 대형 이슈가 잇달아 터진 것도 이 후보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다.

경선 막바지로 갈수록 후보검증 논란이 격화되며 이 후보의 재산 문제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어 놓을 것으로 기대했던 박근혜 캠프의 예상과 다른 양상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격적인 정상회담 발표에 대해서는 박 후보 측이 "이 후보를 어떻게든 본선에 세워 검증으로 흔들어보려는 여권의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니냐"고 강한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박근혜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후보 검증 공방이 정점에 달한 시점에서 아프간 사태와 정상회담으로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박 후보로서는 막판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다"며 경선 과정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식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박 후보를 겨냥한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이 암암리에 회자된 것도 이 후보로서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