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던진 자, 헤어질 수 없다

[중국기행 35] 원가계(袁家界) 기행

등록 2007.08.20 10:15수정 2007.08.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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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8천만 년 전 바다였던 곳. 그 얕은 바다 속에는 조개들이 살고 산호들이 자라고 있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그 산호와 조개들은 마른 채로 땅위에 남아 있었다.

몇 억 몇 천만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무른 땅의 석회질은 비와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깎여 나갔다. 마치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깎은 듯한 이 절세의 기암괴석은 원가계(袁家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험한 원가계의 고산지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험준한 원가계가 가장 늦게 개발된 이유가 원가계의 협곡에 흩어져 살던 토가족을 몰아내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 협곡에서 토가족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원가계는 워낙 험해서 토가족 중 일부는 산적이 되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원가계는 참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다. 이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 눈이 맞춰지고 안목이 높아졌음을 쓸데없이 자부하던 나의 여행경력을 비웃는 곳이었다. 장가계 안에 자리한 원가계는 장가계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한국 여행자들도 가장 많이 다녀가는 곳이다.

백장절벽. 수직으로 솟은 암봉의 높이가 모두 400m가 넘는 곳이다.
백장절벽. 수직으로 솟은 암봉의 높이가 모두 400m가 넘는 곳이다.노시경
백장절벽(百丈絶壁). 원가계에 접어들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거대한 바위, 아니 거대한 하나의 암벽이다. 수직으로 솟은 암봉의 높이가 모두 400m가 넘는 곳이다. 칼로 자른 듯이 날카로운 절벽이 마치 시야를 가리듯이 우뚝 서 있다. 지금까지 내가 눈으로 보아온 기암괴석 암봉의 기억들이 허탈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참으로 넓고 다양한 곳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이 높은 암벽들의 꼭대기와 중간 중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나무들은 원가계의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작은 잡목들이 바위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원가계에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도 높아서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수분이 계속 공급되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다리 이름 '천하제일교'


천하제일교. 암봉과 암봉 사이를 세로로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긴 암벽이다.
천하제일교. 암봉과 암봉 사이를 세로로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긴 암벽이다.노시경
암봉과 암봉 사이를 세로로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긴 48m 암벽이 있다. 자연이 만든 이 다리 밑으로는 높이 약 360m의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이름 하여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다리라는 뜻의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멀리서 보면 이 다리가 너무 높은 곳에 걸려 있어 마치 다리가 하늘에 닿아 보인다는 뜻도 담고 있다. 중국인들의 과장된 작명에 웃음을 금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이 다리의 이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H형 모양의 다리를 건너는 곳에 사랑의 자물쇠들이 잔뜩 걸려 있다. 중국의 명산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사랑의 자물쇠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관습이다. 연인들이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며 걸어둔 것이 사랑의 자물쇠들이다.


나중에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면 이곳에 와서 사랑의 자물쇠를 다시 풀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자물쇠의 열쇠를 암봉의 낭떠러지 밑으로 던지기도 한다. 너와 나는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연인이 헤어져도 내던진 열쇠를 찾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천하제일교 아래의 협곡은 접근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물쇠를 걸고 사랑을 맹세한 연인과 헤어지면, 이 사랑의 자물쇠 미신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천하제일교는 꽤 넓어서 사람이 건널 수 있는 폭이 3m나 된다. 거대한 수평 암봉을 건너며, 바라보는 아래쪽은 마치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하고, 전망이 아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다리를 손을 잡고 건너면 행복하게 오래 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 걸친 듯한 다리 위에서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고 싶은 인간들이 바람이 이 다리에 걸려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암봉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산위를 계속 걸었다. 암봉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명편옥(名片屋)과 중한우의정(中韓友誼亭)이 있다. 우리 일행의 안내인과 절친해 보이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기념품 매점 겸 찻집이다. 이 가게의 처마 아래로는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의 명함이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암봉 정상 아래 부근에 만들어진 등산로를 걷다보면 가끔 기념품 가게들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글로 된 가짜 장뇌삼을 팔고 있었다. 다들 가짜 장뇌삼인줄 알지만 가격이 워낙 싸다보니 일행 중 한명이 장뇌삼 열 뿌리를 샀다. 향내는 진짜 인삼 냄새가 나서 그럴 듯 했다. 호기심이 많은 이 동료는 이 장뇌삼 뿌리를 가져다가 우리 일행의 점심 식사 중 나온 소주에 섞어 인삼주를 만들었다. 원가계를 내려온 후 점심시간, 이 원가계 장뇌삼주는 우리 일행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어울리지 않는 엘리베이터

미혼대. 거대한 거인들이 열병하여 서 있는 것 같다.
미혼대. 거대한 거인들이 열병하여 서 있는 것 같다.노시경
미혼대(迷魂臺)는 넋을 송두리째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이름이다. 특이한 암봉, 눈길이 가는 암봉에는 항상 중국인들이 붙여준 이름들이 있었다. 미혼대는 마치 거대한 거인들 수십, 수백 명이 열병하여 서 있는 것 같다. 봉우리 아래 협곡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정도로 깊다. 분명 혼을 빼앗는 정경이지만, 내 눈은 백장절벽에서부터 원가계의 거대한 암봉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만약 원가계에서 미혼대를 먼저 구경했으면, 분명 넋을 잃었을 것이다.

건곤일주.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
건곤일주.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노시경
건곤일주(乾坤一柱)가 이어진다. 건곤일주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 원가계 지도에서 건곤일주를 보고, 이 건곤일주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기로 했는데, 수많은 암봉 중에 외로이 서 있는 이 암봉이 건곤일주임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꽃의 정원 같이 아름다운 암봉들이 이어지는 후화원(后花園)에서 원가계의 절경들과 헤어졌다. 나와 나의 일행은 세계 최초의 관광용 엘리베이터라고 하는 백룡(百龍)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326m를 수직으로 내려왔다. 이 강철구조의 엘리베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절벽에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2분 만에 나를 원가계에서 지상세계로 인도하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밖의 풍경을 내려다보면, 유리 밖의 거대한 암봉들이 순식간에 모습이 변하며 지나가고, 엘리베이터는 암봉 속으로도 154m를 들어간다.

백룡 엘리베이터. 순식간에 326m를 수직으로 내려간다.
백룡 엘리베이터. 순식간에 326m를 수직으로 내려간다.노시경
나는 이 신비로운 원가계 암봉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들었다. 거대한 금속성의 기계가 아름다운 암봉에 걸려 있는 것이 왠지 조화롭지 못 하다. 이 아름다운 원가계에 굳이 세계 제일의 엘리베이터가 필요할까 싶다.

나는 이 높은 산악에서 전혀 다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절경을 감상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산 정상을 오른 후 땀을 흘리며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감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순식간에 내려온 엘리베이터 아래에서, 이제는 원가계의 거대 암봉들을 위로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가계 #원가계 #천하제일교 #미혼대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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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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