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대선출마에 부쳐

유시민의 전제,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

등록 2007.08.19 10:53수정 2007.08.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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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분홍색 티셔츠는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지난 2001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노무현을 외쳤건만, 오늘 노란색 티셔츠를 다시 입기 싫은 이유와 동일하다. 노란색 티셔츠 색깔이 분홍색으로 바뀌었지만 분홍 티셔츠가 이미 빛바랜 노란 티셔츠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확인한 까닭이다.

유시민 전 장관이 대통령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유 전 장관은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5가지 질문'을 통해 전제를 깔았다. 유 전 장관은 던지는 전제를 듣던 중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출마한다면 위의 5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노무현 대통령이 단상 위에 올라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런 '꼬인 생각'은 우연이 아니다. 유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제대로 꿰뚫어보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그래서다. 신기남 의원이 이날 연설에서 '짝퉁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칭했던 민주신당의 몇몇 대선후보들과 유 전 장관이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문제는 그가 '진퉁'이기 때문에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참여정부가 입으로만 했던 개혁에 대한 책임이다.

18일 유 전 장관이 던진 '5가지 질문'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시민의 전제 5가지는 사실 참여정부가 그동안 '왜 입으로만 개혁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변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5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과 마지막 질문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유시민에게 출마를 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유 전 장관이 이야기하는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걱정인 것은 바로 그가 염두에 둔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다수 국민의 행복과 너무 멀리 있다는 점이다. 민주개혁 세력이라고 자부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나라 발전을 위해 했던 것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국가보안법 철폐 좌절, 굴욕적인 한미FTA 체결, 비정규직을 용역화하는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 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한 것이었다. 유시민은 지금 착각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참여정부의 일등공신이었던 유시민이 이야기하는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이라크에 추가파병을 하면서까지 운운했던 국익의 연장선은 아닌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제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또 본선에서 이기면 대한민국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됩니다. 대통령을 만드는 건 지지자들이지만, 당선되는 순간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됩니다. 더러는 낙선한 다른 정당 후보의 공약 가운데 그 정당의 유권자들이 간절히 바라고 국가발전에 좋은 것들은 수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왜 지지자를 배신하느냐고 비판하고 등을 돌리실까 저는 겁이 납니다. 제가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시민 전 장관을 보며 한숨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발언 때문이다. 차라리 그가 참여정부에 몸 담으며 지난 시절 지지자들을 대변하지 못했던 과오에 대해 고개를 숙였더라면 정이라도 남을 텐데 그나마 있던 정나미마저 떨어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기대했던 것은 바로 낮아진 정치의 문턱이었다. 그런데 유시민의 저 발언은 나랏일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 초기,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출근해 "국회를 모독하느냐?"는 '어른'들의 질타에 "국회는 내 일터"라며 응수하던 초선의원 유시민은 이제 없다. 이제 그는 면바지를 입고 출근하지 않을뿐더러 차림새만큼이나 '어른'들을 닮아버렸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 시절의 유시민은 이제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분홍색이 빛바랜 노란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져야만 하는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
#유시민 #대선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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