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박 하나 안 사나?송유미
동네 할머니들이 차린 채소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외면하지만, 할머니들은 이상하게 나만 보면 불러세운다.
"흥부 박 안 사나? 박 하나 사라."
이 더운데 수박도 아닌 무거운 박을 어떻게 들고 가느냐고 말하고 싶지만, 할머니들이 부르니 걸음을 안 멈출 수 없다.
"할머니, 난 박을 그냥 줘도 요리해 먹을 줄 몰라요. 다음에 살게요."
지나다닐 때마다 사나른 채소를 다 먹지 못해 버려야 하는 판국에 박 요리는 해 본 적도 없어 능청을 떠니, "내가 박 껍질을 다 깎아 주고 요리하는 법도 가르쳐 줄 테니 걱정 말구 하나 사라구"라고 하신다.
채 대답도 하기 전에 할머니의 칼에 박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박 껍질을 벗기는 할머니의 칼날이 너무 무뎌서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저 박 속에서 흥부처럼 황금이 쏟아진다면? 저 박은 할머니 박인가, 내가 산 박인가?
엉뚱한 상상은 나래를 펴고, 할머니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박을 몰라. 박이 얼마나 시원한데, 채를 썰어 조개 넣고 기름에 볶아 봐. 얼마나 반찬으로 좋은데…." 빈정거림인지 나무람인지 중얼거리신다.
둥근 박은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