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중심으로 실력파 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준 2005년 작 앨범 표지EMI 음반사
물론 장한나씨는 소속사 EMI를 통하여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였고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 귀에는 팽팽한 장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2005년 작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이 간절한데, 그래서 그 앨범을 요즘도 차 안에서 듣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다만 그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밖의 '소품집'이나 때 이른 '베스트 앨범'은 굴지의 음반사 EMI의 틀에 박힌 마케팅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일 뿐이고, 아무튼 생상과 차이코프스키를 중심으로 빚어낸 11년 전의 첫 앨범이 준 바와 같은, '역시 장한나'라는 충격의 결정판은 아직은 미완이라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런데 지휘자로 데뷔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마침내 데뷔하였으며 그 과정 및 그 이후의 몇몇 '음악 교육 행사' 과정이 이번에 MBC 음악 다큐를 통하여 알려진 것이다.
그 제작 과정에서 빚어진 양측의 설전과 상관없이, 나는 장한나씨의 이러한 선택을 매우 아쉽게 여긴다. 물론 오늘날의 정명훈씨도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 시작하였고,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사람도 지휘와 피아노 양면에서 우람한 성채를 쌓고 있지만, 그 과정의 어떤 수미일관된 수련의 자세랄까, 혹은 수많은 악기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소리를 그야말로 엄밀한 해석과 확고한 미학적 신념으로 순식간에 정련시키는 지휘자로서의 무게는 상당한 기간의 공부가 반드시 그 바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장한나씨가 지휘자로 데뷔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 첼로를 버릴 것도 아니고, 그의 야심만만한 음악적 포부가 반드시 무거운 악기를 안고 의자에 앉아야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가벼운 지휘봉을 들고 서서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한나씨의 지휘자 데뷔는 '첼리스트' 장한나의 결정판을 기다려온 사람으로서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였고 특히 그 과정을 방송사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은 심각한 패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다. 왜 화면은 종종 정말 '거장'의 위용을 찍기라도 하듯이 장한나씨 밑에서 연거푸 올려다보는 것으로 이어질까? 정말 거장이 탄생한 것일까?
철학과 선택의 신선함, 지휘자 데뷔의 안타까움
이런 얘기를 강조하는 것은, 그녀가 2002년에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하였을 때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하였는데, '신동'과 '천재'의 과정을 거쳐 '거장'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그녀라면 국내외의 명문 음대 어디라도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철학과로 결정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특히 그녀가 음악을 좀 더 근원적이며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과 문학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무렵의 어느 지면에서 기꺼이 박수를 보낸 바도 있다.
해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이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보고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주어진 과제곡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연주해내는 실력에 놀라고, 그 곡 말고는 평이한 수준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서 또 놀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