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정문 월대. 가뭄이 들면 속설에 따라 음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열었던 문이다. 스승과 제자도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이정근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번 가정해보고 싶다. 원천석이 국가라는 큰 틀에서 가르침을 내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고귀한 금언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는 약효가 떨어진다. 이 때 태종 이방원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태종 생애에 있어서 가장 심약할 때이다. 원천석이 태종에 대한 미움을 접고 큰 가르침을 내려주었다면 물꼬를 돌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횡성에서 강무가 끝났다. 강무 후에는 뒤풀이로 사냥이 있게 마련이다. 대화역 서쪽들에서 하룻밤을 야영한 태종은 미면산(米面山)에서 사냥을 즐겼다. 진보역과 방림역을 지나 횡성 실미원(實美院)에서 사냥을 끝낸 태종이 한 달 만에 환궁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상소가 올라왔다.
"민무회 등이 나라에 득죄하였으니 왕법으로 마땅히 다스려야 합니다. 지난번에 대소 신료와 신들이 같은 말로 죄를 청하였는데 전하가 다스리지 말라고 명하였으니 사은(私恩)에는 가하나 공의(公義)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청컨대, 법대로 국문하소서."
"노 할미가 있어 처결하기가 심히 어렵다. 대언이 모두 내 뜻을 알 것이다."
"신 들이 베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말한 사연을 알지 못하니 원컨대 죄명을 밝게 바로잡아서 대부인(大夫人)으로 하여금 민무휼의 죄가 무슨 일인지를 알게 하소서."
"민무휼·민무회가 있는 곳에 섶을 지고 물을 긷는 외에 그 나머지 노비·안마(鞍馬)·복종(僕從)을 모두 다 옮겨 두고 그 왕래를 금하라. 식량을 운반하는 것은 모두 소를 쓰고 말을 쓰지 말 것이며 만일 말로 왕래하는 자가 있으면 그 말을 관가에 몰수하라."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유배 강도를 높였다. 귀양살이하고 있는 민무휼 형제를 더욱 조이는 조치다. 한양의 공기를 감지한 민무휼 형제가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비책이다.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태종은 궁궐을 빠져나와 상왕(上王) 정종을 모시고 풍양현(豐壤縣)에 나아가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가평 수화이산(愁火伊山)에 며칠간 머무르던 태종이 환궁했다.
왕실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궁에 돌아온 태종에게 모처럼 기분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하 자식들의 혼인 문제였다. 4녀 정선궁주와 제1 서남(庶男) 이비(李裶) 그리고 제2 서남 이인(李裀)의 혼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왕실에 경사가 난 것이다.
"원윤(元尹) 이인(李裀)을 신이충(愼以衷)의 집에 결혼시키고자 하였는데 들으니 신이충이 허물이 있다 하니 그러한가?"
"지난날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대언 조말생이 대답했다.
"이것뿐만 아니라 신이충은 설회의 사위이고 설회는 채홍철의 손서(孫壻)인데 채씨는 본래 기생의 손자입니다. 어찌 금지(金枝)와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지신사 유사눌이 덧붙였다.
"이인의 어미도 천하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미 최사강의 딸에게 정혼하였다. 정적(正嫡)의 아들로서 괜찮게 살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처부모의 은애(恩愛)를 받아야 그 삶을 편안히 살 수 있겠으므로 재산을 구비한 곳에 결혼하려고 하는 것이다."
"원윤 이비는 변함이 없으십니까?"
유사눌이 물었다. 훗날 임금의 적자(嫡子)를 대군, 서자는 군이라 불렀지만 이 당시에는 적자를 군 또는 대군이라 칭했고 서자(庶子)를 원윤(元尹)이라 불렀다. 고려의 유습이다.
"첨총제(僉摠制) 김관의 딸에게 장가들게 하기로 하였다."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
지신사 유사눌이 주억거렸다.
"전하, 원윤 이비의 혼인을 감축 드리고자 교하에서 찾아 온 노파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 하옵니다."
파주 교하에서 온 의문의 노파
파주 교하는 원윤(元尹) 이비(李裶)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다. 원경왕후 몸종이었던 김씨의 몸에서 태어난 이비는 서자였기에 궁에서 자라지 못했다. 태종은 그것을 가슴 아파했다.
"들라 이르라."
옥색치마저고리를 갖춰 입었으나 촌티를 벗지 못한 노파가 들어와 넙죽 절을 했다. 가까이 들라 일렀지만 노파는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지신사는 자리를 물러나도록 하라."
노파와 임금이 마주 앉았다. 파격적인 일이다. 신하와 임금의 독대는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노파는 비정치적이라 예단하고 격을 깬 것이다. 지신사 유사눌이 물러나자 노파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노파의 이야기를 듣던 임금의 얼굴이 굳어지더니만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노파의 이야기가 더 이어지자 임금이 꺼억꺼억 흐느끼기 시작했다. 체통도 위엄도 없었다. 하염없이 흐느낄 뿐이었다.
잠시 후, 태종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만 분노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불화살을 맞은 한 마리의 호랑이와도 같았다. 민무휼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간 결정적인 계기였다.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신사 유사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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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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